[역경의 열매] 김상훈 윤정희 부부 (4) “엄마, 나도 아프니까 이제 잘해 줘”

입력 2020-02-06 00:08
윤정희 사모(왼쪽)의 어깨에 기댄 11남매의 맏이 김하은씨.

2000년 5월 하은(23) 하선(22) 두 자매가 우리 부부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아내(윤정희 사모)가 어린 시절부터 장모님과 함께 봉사를 다니던 ‘늘사랑아동센터’ 원장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너무너무 예쁜 애가 있어요.”

아내가 어렸을 때부터 뵀던 원장님이니 유산을 겪은 우리 부부의 아픔과 전후 사정을 잘 아시리라 믿었다. 그런데 원장님은 머뭇거리더니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예쁘긴 한데… 몸이 조금 아파요.”

아내는 달라질 게 없다고 했다. 처녀 시절 장애아동들과 함께 살겠다고 결심까지 했던 사람이니까. 함께 아동센터로 향했다. 첫눈에 우리 딸을 알아보았다.

구석에 앉아 있는 조그만 아이. 세 살짜리 꼬맹이 하은이였다. 아동센터에 온 지 반년이 지났는데 처음 며칠은 잘 놀더니 그 뒤론 밥 먹고 화장실 갈 때만 빼고 그렇게 앉아만 있다고 했다. 무표정한 하은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하은이 동생 하선이도 만나고 싶었다. 18개월 된 하선이는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몸무게 8.8㎏… 너무도 작은 하선이가 병실에 누워 있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이자 선물인 하은이와 하선이를 만났다.

처음 나는 건강한 아이를 입양하고 싶었다. 지금은 열한 명이지만, 당시엔 두 명을 한꺼번에 데려오는 것도 부담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의지는 확고했다. 한 번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는 따듯하고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다. 공사현장 일을 하면서 아이들 간호에 매진하기 위해 집도 현장 근처로 이사했다.

원장님 말씀대로 두 아이는 몸이 좋지 않았다. 하선이는 폐 질환으로 날씨가 조금만 흐리면 감기에 걸려 수시로 병원에 드나들어야 했다. 하은이는 비교적 건강했지만, 정밀 검사를 받아보니 눈동자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는 ‘간헐성 외사시’였다. 2003년 하은이는 눈 수술을 받았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난 하은이가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 “엄마 엄마, 나도 아프니까 이제 잘해 줘.”

맏딸이어서 둘째보단 잘 버티겠거니 생각해 보듬어 주지 못한 날들이 생각났다. 아내는 당차지 못하다고 괜스레 아이를 나무라고 입에 물고 있던 손가락을 빼며 성질을 냈던 게 죄스럽다고 울었다.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며 하은이는 너무도 속 깊은 딸이 돼줬다. 엄마와 아빠를 묵묵히 안아주고 기다려줬다.

하은이는 중학교 때 미국 뉴저지 하나님의학교(NJUCA)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3년간 미국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한다. 전문 선교사가 꿈이다. 집에서도 엄마 아빠를 도와 동생들을 보살피는 천사표 딸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참 좋아한다. 얼마 전에는 엄마에게 이런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엄마 엄마. 엄마가 바로 ‘왜’ 하고 말할 거 같애. 요즘 엄마 참 힘들지. 남동생들 맨날 사고에 하선이도 아프고 나도 없는데 엄마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기도가 너무 나와. 요즘은 기도를 많이 하고 있어. 기도할 때마다 주님이 주는 감동이 있어. 조금만 더 견디라는 거야. 엄마. 힘들어도 조금만 견뎌. 우리가 크고 있어. 나도 실습 잘하고 있고, 하선이도 건강이 나아지잖아. 캐나다에서 자리 잡으면 엄마는 꼭 나한테 와. 이제부터는 내가 엄마한테 다 해줄게. 엄마 조금만 참고 견뎌. 알았지. 난 엄마밖에 없어. 엄마는 나의 슈퍼히어로, 울트라 짱짱짱이야. 엄마 사랑해. 영원한 엄마의 큰딸 하은이가.”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