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 월출산, 달님 품에 안긴 달 뜨는 산 근육질 기암괴석

입력 2020-02-05 21:09
전남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학파제1저수지 너머로 월출산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다.

8일은 정월대보름이다. 다양한 세시풍속이 행해지지만 ‘달맞이’를 빼놓을 수 없다. ‘달맞이 산’을 찾아가는 여행지로 대표적인 ‘달 뜨는 산’ 월출산(月出山)의 고장인 전남 영암이 으뜸으로 꼽힌다. 월출산은 1000년 전에도 ‘달맞이 산’이었다. 통일신라 때 월내악(月奈岳)으로 불렸고, 고려 땐 월생산(月生山)으로 부르다 조선 들어서 월출산이란 이름으로 굳어졌다.

‘달맞이 산’이란 이름에 걸맞게 월출산 자락엔 월곡리·송월리·월남리·월롱리·야월리 등 ‘달 월(月)’ 자가 들어간 마을이 많다. 이 가운데 월롱리는 마을에 있는 큰 연못에 비친 달이 물결과 서로 희롱하는 듯해 지어진 이름이다. 영암(靈巖)이란 지명도 월출산의 영험한 바위에서 유래한다.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 3개가 있어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영암군과 강진군 경계의 월출산은 국내 국립공원 가운데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지만 최고봉 천황봉(809m) 주변 능선은 기암괴석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설악산·주왕산과 함께 국내 ‘3대 바위산’으로 꼽힌다. 월출산을 만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나는 월출산에 직접 올라 절경을 느껴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멀찍이 물러나 우뚝 솟은 월출산을 마주하는 것이다. 다가서 보면 기기묘묘한 근육질 화강암과 힘찬 능선이, 멀리 물러서 보면 가로막는 것 없이 월출산의 전신이 그대로 드러난다.

먼저 월출산을 올라보자. 월출산 산행 들머리는 천황사 터, 도갑사, 경포대, 산성대 입구 네 곳이다. 가장 일반적인 구간은 천황사탐방소에서 시작해 바람폭포, 천황봉, 사자봉, 구름다리, 천황사탐방소로 회귀하는 6.6㎞코스다. 하지만 요즘은 2015년에 개방된 산성대 코스가 인기다.

산성대 코스의 암릉.

산성대 코스의 입구는 영암실내체육관에서 가깝다. 월출산 둘레길인 ‘기찬뫼길’의 들머리와 겹쳐진다. 해발 471m의 산성대까지는 천천히 고도를 높인다. 곳곳에 솟아있는 암릉에 올라서면 영암의 거대한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성대 입구 바위에는 ‘월출제일관(月出第一關)’이라는 음각의 글씨가 뚜렷하다. ‘문바위’라고도 불린다. 이어 탐방로의 중간쯤에 있는 산성대다. 월출산의 봉수대를 일컫는다. 이곳에서 광암터삼거리까지는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성난 사자의 갈기 같은 암봉이 이어진다. 힘든 만큼 최고의 절경을 선사한다. 철제 난간을 딛고 바위에 올라서면 또 다른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오를 때마다 최고의 조망대가 따로 없다.

탐방로 중간에 거대한 돌문 형상의 바위를 만난다. ‘고인돌 바위’다. 생긴 모양이 꼭 닮았다. 기묘한 바위가 많은 월출산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신비한 모습이다. 광암터삼거리에 이르면 산성대 코스는 월출산을 대표하는 천황사 코스와 만나 정상까지 이어진다. 천황봉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는 거친 암봉의 능선이 장대하게 이어진다.

산성대 코스 들머리 가까운 곳에 지난해 10월 29일 문을 연 한국트로트가요센터가 자리한다. 영암 출신 가수 하춘화의 아버지 하종오씨는 딸이 데뷔한 1961년부터 50년 남짓 모은 트로트 관련 자료와 음반 등을 고향 영암군에 기증해 한국트로트가요센터를 건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가수 송가인 덕분에 트로트 열풍이 거세지면서 이곳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월출산 기찬랜드에 자리한 한국트로트가요센터.

월출산기찬랜드에 문을 연 한국트로트가요센터에 들어서면 데뷔 당시 일곱 살 하춘화 밀랍인형이 반긴다. 1층에는 트로트역사관, 명예의 전당 등이 마련됐다.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트로트의 흐름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2층은 하춘화전시관이다. LP와 카세트테이프, CD 등 다양한 앨범, 공연 의상과 사진, 영상과 팸플릿 등을 통해 50년 넘게 가수로 활동한 하춘화의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국트로트가요센터 뒤에는 가야금산조테마공원이 자리한다. 공원 내 가야금산조전시관은 가야금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해 초보자도 이해하기 쉽게 꾸몄다.

이른 아침 덕진 차밭에서 본 월출산.

월출산은 멀리 물러섰을 때 비로소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다른 아무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온전한 산의 형상을 통째로 바라볼 수 있어서다. 최고의 전경을 선사하는 곳이 덕진 차밭이다. 1979년 순수 재래종 차나무를 심어 조성한 제법 너른 차밭이다. 월출산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덕진면 운암리 백룡산 자락에 들어서 있다. 차밭의 정상에 올라서면 ‘기가 막힌’ 풍경이 펼쳐진다. 거대한 초록 융단 너머로 운암리 들판이 바다처럼 열리고 그 뒤에 월출산이 섬처럼 우뚝하다. 달빛에 물든 월출산은 서호면 엄길리 학파제1저수지에서 봐도 멋지다. 월출산에서 얼굴을 내민 둥근 달이 저수지에 비친 모습은 환상 그 자체다.

▒ 여행메모
장작 때는 전통 한옥에서 피로 해소
갈낙탕·낙지구이·연포탕… 영암 별미


전남 영암 월출산에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좋다. 목포나들목에서 나와 해남 방면을 택한다. 국도 2호선 목포 방조제를 넘어 영암 쪽으로 방향을 잡아 학산면에서 819번 지방도를 타면 영암 읍내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광주나들목에서 빠져 나주 방향 13번 국도를 따라 영암까지 간다. KTX를 이용해 광주송정역에서 내려 렌터카를 이용하면 40여 분 걸린다.

월출산 광암터삼거리 인근에서 내려다본 사자봉 구름다리.

산성대 코스 들머리는 영암실내체육관 건너편 현대 대동주유소 옆 작은 공원을 찾으면 된다. 무료주차가 가능하다. 천황봉까지 편도 3시간쯤 걸린다. 월출산의 명물인 사자봉과 매봉을 잇는 구름다리는 겨울철 탐방 금지 구간이다.

숙소로는 군서면 모정마을의 전통 한옥 월인당이 유명하다. ‘달빛이 도장처럼 찍히는 집’이다. 월출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흙으로 만든 가옥에 장작을 때서 설설 끓는 아랫목은 여행에 지친 피로를 풀기에 그만이다. 사전 예약이 필수다. 월출산온천관광호텔과 월출콘도가 비교적 규모가 크다.

영암의 별미는 갈낙탕이다. 전라도 한우와 개펄에서 잡은 낙지를 탕으로 끓여낸다. 세발낙지를 젓가락에 감아 양념해 살짝 구워낸 낙지구이도 일품이다. 낙지연포탕도 빼놓을 수 없다. 학산면 독천 일대에 낙지요리를 하는 집들이 많다. 영암은 국내 무화과 시배지다.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나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영암=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