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사는 A씨 부부는 심하게 다퉜다. 서로 성이 잔뜩 올라 며칠째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다. A씨는 아침밥만 먹으면 경운기를 몰고 나가 할 일도 없이 밭을 둘러보다 저녁때나 돼서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는 비닐하우스로 나가 채소밭을 손질했다. 그리고 아내가 물일 하는 날이 다가왔다. 아내가 A씨에게 닷새 만에 처음 입을 열었다. “내일 어디로 들어가 어디로 나온다.” 물일의 시작 지점과 나오는 지점을 알린 거다. 이튿날 A씨는 나오는 지점에 정확하게 경운기를 대고 대기했다.
B씨는 아내가 물에 들어가는 날 방파제에 자신의 화물차를 멀리서도 잘 보이게 세워둔다. 옷도 아내가 사준 것을 입는다. 그리고는 눈에 잘 띄도록 이리저리 몇 차례 왔다 갔다 한다. 아내는 바다 멀리서 물일을 하면서도 금세 알아본다. 아내는 남편 차가 보이지 않을 때는 물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남편 차를 본 뒤부터 잡을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단다. 잠시 뒤 다른 차 한 대가 스르르 다가왔다. 남편은 그 차를 타고 읍내 모처로 달아난다. 그곳에는 같은 사정의 다른 남편들이 기다리고 있다. 술을 마시거나 카드를 하며 논다. 아내가 물에서 나올 때쯤 일제히 흩어진다.
C씨는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다. 가정폭력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안다. 그렇게 살던 때다. 겨울이었는데 아내가 물에 들어갔다. C씨가 바다에 나와 불턱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피우고 있었다. 아내가 나오면 불을 쬐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해녀 탈의장에 온수시설 같은 것이 없던 때다. 동네 청년이 지나다 “뭐 하세요” 하고 물었다. C씨가 대답했다. “너도 나이 먹어 봐”라고 했단다. 하도리에 전설처럼 전해오는 얘기다.
D씨는 군대 갔다 제대하고 어머니가 우뭇가사리 채취하는 바다에 마중하러 나갔다. 해녀가 우뭇가사리를 망사리에 가득 담아 나오면 남자들이 망사리를 물 위로 올린다. 이를 우미마중이라고 한다. D씨는 좋은 일 한다고 어머니보다 나이 많은 해녀의 망사리를 올리고 있었다. 마침 그때 어머니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망사리를 밀고 바닷가로 나와 잠시 기다리게 됐다. D씨는 어머니로부터 귀가 찢어질 듯한 욕을 들었다. 어머니 것을 먼저, 그것도 빨리 받았어야 했다.
우뭇가사리 작업을 하는 5월은 해녀들에게 가장 바쁠 때다. 1년 소득의 절반 정도를 우뭇가사리로 번다. 우뭇가사리 작업은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한다. 밭은 경계가 있지만 바다는 없다. 그 안에서 누구나 채취하는 사람이 임자다. 남들보다 한 줌이라도 더 하기 위해 망사리가 빵빵하도록 채워 물가로 나와 마중에게 전해주고 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빈 망사리를 끌고 다시 바다로 나간다. 가득 채운 우뭇가사리 한 망사리는 20만~30만원이다. 무지하게 치열하다. 그런데 마중한답시고 나온 아들이 남의 망사리 받느라 어머니를 물속에서 기다리게 한 것이다. 오지게 욕을 먹었다.
‘봄 잠녀는 건들지 마라’고들 말한다. 5월 한 달 작업하는 우뭇가사리로 신경이 곤두선 해녀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라는 뜻이다. 시아버지부터 남편, 아들까지 남자들은 조심한다. 우뭇가사리 기간에 제사가 걸리면 남자들이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린다. E씨는 주방에서 통장 서너 개를 들여다보는 아내를 보았다. “얼마나 되는데” 하고 물었다. 아내가 대답했다. “알아서 뭐하게.” E씨는 아내가 얼마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해녀의 힘은 통장에서 나온다. 해녀의 남자들은 아내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모르니까 더 두렵다.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