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혁신·미래’ 가치를 앞세워 총선 승리를 다짐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스텝이 갈수록 꼬이고 있다. 당 지도부의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 비공개 결정으로 자연스러운 인적 쇄신은 물건너가는 분위기다. 공천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전현직 대통령 직함 사용을 불허한 결정 역시 정치 신인에게 불리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당이 영입한 일부 인재들까지 혁신과 미래라는 가치를 보여주기에 역부족이란 평가까지 나오면서 사면초가에 몰린 모습이다.
설 연휴 직후 당사자에게 개별 통보된 하위 20% 의원 명단은 철통 보안에 부쳐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의신청을 한 의원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위 20% 해당 의원들의 용퇴 선언이 잇따르면서 새 인물을 투입할 공간이 생기기를 기대했던 당 지도부는 내심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다. 당 핵심 관계자는 3일 “황금 지역구를 쥐고 있는 지도부 몇몇 인사들과 다선 중진들이 자기 밥그릇만 지키며 꼼짝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에선 이해찬 대표와 최고위원들의 하위 20% 명단 비공개 결정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의원은 “이제 와서 불출마를 선언하면 하위 20%로 낙인찍힐 텐데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며 “아주 접전이 아니면 하위 20%에 적용되는 페널티가 경선에서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위 20% 의원 모두 경선을 완주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니 현역 의원 가운데 지역구에 경쟁자가 없는 단수 후보자가 64명에 달한다.
이에 민주당은 하위 20% 의원 지역구에 영입 인재들을 배치해 경선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하위 20% 의원은 경선에서 전체 점수의 20%가 감산되는 반면, 정치 신인은 최대 20%(여성·청년·장애인은 25%)의 가산점이 있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현역 의원 물갈이에 대비해 데려온 인재들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가 나온다. 데이트 폭력 전력 때문에 하차한 원종건씨를 비롯해 영입 인재들이 논문 표절, 이력 부풀리기 등 다양한 구설에 휘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천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청와대 출신 예비후보들이 노무현·문재인 등 전현직 대통령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한 것을 두고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이 경쟁하면 인지도 면에서 현역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출신 출마자는 “지도부가 현역 의원 기득권만 챙겨주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세대교체나 정치 개혁 등 혁신 가치를 내세워 뛰어든 정치 신인들이 현역 프리미엄에 밀려 지역구 진출 기회를 못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 관계자는 “일부 최고위원들의 지역구 경쟁자 면면을 보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몇몇 최고위원 지역구에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도전장을 내민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당 주변에선 지도부가 선거를 너무 쉽게 치르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지도부의 결정이 국민에게 오만하게 비칠까 불안하다.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처럼 지지율에 취해 있다가 제1당 자리를 내주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민 눈높이에 못 미치는 ‘문제 인사’들 정리 과정도 매끄럽지 않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여론과 당의 압박에 못 이겨 이날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정봉주 전 의원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신재희 박재현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