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메르스때 만든다더니… 감염병전문병원 ‘감감’

입력 2020-02-03 18:34 수정 2020-02-03 21:32
3일 오전 세 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입원 중인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업무를 위해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은 5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이후 필요성이 제기돼 짓기로 결정하고도 첫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은 150개 이상의 음압격리병상을 갖추고, 감염병 진료·교육을 전담하는 시설이다. 정부는 부지 확보 어려움, 소음환경 기준 미충족 등을 이유로 든다. 다만 대체부지 마련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헛바퀴만 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업 추진이 지연되면서 올해 관련 예산은 399억원에서 51억원으로 87%나 깎인 것으로 확인됐다.

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51억원으로 당초 정부안(399억2100만원)보다 크게 줄었다. 5년 전 정부는 메르스가 발병하자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한 국가 방역체계 개편 방안’을 마련했다. 메르스를 겪으며 절감한 전문인력·시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을 구축하기로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감염병 진료와 임상연구·교육까지 전담하는 중앙감염병전문병원으로 만들기로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서울 중구에서 서초구로 부지를 옮기는 걸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전 후에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을 위한 전문시설도 함께 짓는다는 계획도 세웠다. 내부 기압이 낮아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음압격리병상을 150개 이상 만들고, 생물안 전등급이 높은 실험실도 갖추기로 했다.

그러나 병원 설립은 겉돌고 있다. 우선, 국립중앙의료원의 부지 이전이 답보 상태다. 문화재 발굴조사, 추가부지 및 진입로 확보 등으로 2017년에야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시작했다.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시설 구축도 주민 반대 등으로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가 2018년에 겨우 끝났다.

여기에다 최근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발목을 잡혔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사업을 진행할 때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평가 결과 경부고속도로 확장으로 변경된 소음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각종 악재로 지난해 설계비 예산(현대화 사업 65억3300만원, 감염병원 구축 18억200만원)은 100% 가까이 쓰이지 못하고 불용 처리된 것으로 전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도 전체 예산이 51억원으로 크게 깎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립중앙의료원 이전과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구축 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문제도 생겨 최소한의 예산만 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2015년에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구축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도 3년이 지난 2018년 6월에야 전략환경영향평가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환경부에 평가서를 제출하는 단계까지도 가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복지부가 평가서를 제출해야 사업을 할 수 있을지 검토·협의해볼 텐데 아직 자료 자체가 넘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신준섭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