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방한 등 고려 ‘제한적 입국금지’… 뒷북 대응 논란

입력 2020-02-03 04:05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관련 감염병 전문가 간담회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부가 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산과 관련해 중국인에 대한 제한적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국내 여론과 주요 국가의 선제적 입국 금지 조치 등을 감안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다만 정부로서는 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등 정치·외교적 상황도 고려해 전면적 금지가 아닌 제한적 금지라는 고육지책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신종 코로나 발병지인 중국 후베이성을 14일 이내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 있는 모든 외국인에 대해 4일 0시부터 입국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에는 신종 코로나 확산을 우려하는 여론이 가장 큰 배경이 됐다. 정부의 총력 대응에도 불구하고 15번째 국내 확진 환자가 발생했고, 국내 3차 감염자까지 확인되는 등 신종 코로나가 확산일로에 있다. 신종 코로나 확산 이후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66만명을 넘어섰다. 게다가 4월 총선도 다가오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정부·여당에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등 여론이 심상치 않자 중국인 제한적 입국 금지라는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미국 일본 호주 등 다른 국가들의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의 초강경 대응 기조에 우리만 ‘나홀로’ 행보를 하기에 정부로서도 부담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가 전면적인 중국인 입국 금지가 아니라 제한적 금지를 결정한 것은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이후 냉각기를 거쳤던 한·중 관계는 올해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의 릴레이 방한을 앞두면서 해빙기를 맞을 전망이었다. 특히 시 주석은 방한 시점을 올 상반기로 특정하고, 일정을 조율 중인 상태였다. 또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대북 영향력이 큰 중국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두 번째 흑자국인 중국과의 경제 교류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인 중국 정부도 세계 각국의 중국인 입국 제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 왔다. 싱하이밍 신임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1일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여행·교역 제한을 반대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 규정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한국 정부가 중국인 입국 금지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여러 선진국과 비교해 늦었다는 비판도 있다. 앞서 대한의사협회도 지난 1일 “감염 위험이 높은 지역에 대한 입국 제한, 항공 운항 중단 조치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신종 코로나가 후베이성뿐 아니라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전역으로 확산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제한적 입국 조치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앞서 지난달 30일 오후 후베이성 우한 교민을 수송하기 위한 전세기를 투입한 것도 미국, 일본 정부보다 대처가 하루 늦었다.

정부는 향후 신종 코로나 확산 상황에 따라 추가 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날 “세계 각국에서 입국 금지를 하고 있는데 최인접국인 우리만 안이한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