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유력한 재계 인사가 부산저축은행의 캄코시티 채권을 인수하겠다며 예금보험공사에 의향서를 전달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영업 정지로 6200억원의 피해를 본 3만8000명을 구제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다만 예보는 훈센 총리 면담 요구 등 캄보디아 정부를 통한 재판 압박에 매달리고 있어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캄코시티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3㎞가량 떨어진 신도시다. 2005년 2369억원가량을 대출한 부산저축은행과 월드시티 대표 이모씨가 각각 60%, 40% 지분을 가지고 6단계 개발 계획에 착수했다. 하지만 2010년 분양 실패로 사업이 좌초되고 부산저축은행은 파산했다. 예보는 부산저축은행 파산 처리에 공적자금 6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캄코시티 관련해 부실채권(현재 6700억원 상당) 및 월드시티 지분 60%를 인수했다. 예보는 이씨로부터 2014년 월드시티 지분 60% 반환 소송을 당해 6년째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2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끗맹 캄보디아상공회의소 회장 겸 로열그룹 회장 명의의 2018년 10월 12일자 의향서(LOI)에는 캄코시티 자산을 64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울러 예보가 보유한 캄코시티 현지 시행사 월드시티 지분 60%도 인수 대상에 포함돼 있다.
끗맹 회장은 인수 의향서에서 채권 인수 금액은 협상 가능하다고 밝혔다. 특히 월드시티 지분 인수와 관련해 “현재와 미래의 법적인 틀(legal framework)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예보가 이씨와 벌이고 있는 지분 반환 소송을 적극 돕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로열그룹은 캄보디아 재계 순위 5위 대기업집단이다. 끗맹 회장은 훈센 총리의 측근으로 불리며 해외 순방에도 동행해 왔다. 철도, 발전소, 공항 등 국가 기간산업을 수행한 재계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위성백 예보 사장은 2018년 12월 19일자로 답변서 형식의 서한을 끗맹 회장에게 전달했다. 위 사장은 “예보는 금융위원회 산하 기관으로서 귀하(끗맹 회장)가 훈센 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료, 법원 당국자들과 논의하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아울러 “월드시티가 보유한 캄코시티 부지 120㏊는 부산저축은행이 투자한 것이며 이씨는 돈 한푼 대지 않았다(zero money)”는 점을 적시했다. 사실상 ‘훈센 총리 등과의 논의’ 대상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 지분 소송과 관련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캄보디아 정부를 동원해 사법부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예보 관계자는 “자산 인수에 나선 로열그룹 측이 총리의 한 마디면 소송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니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며 “합법적인 선에서 해결해 달라고 동의해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예보는 끗맹 회장을 포함해 여러 경로로 훈센 총리 접견을 시도했지만 모두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현지 소식통은 이와 관련, “훈센 총리는 국내 시국 상황을 감안해 캄코시티 문제 해결에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캄코시티 정상화를 희망하는 캄보디아 정부와 국민 입장에서 예보가 자산만 팔아치우고 떠나려 한다며 의심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