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우한의 또 다른 경고

입력 2020-02-03 04:03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인 ‘슈퍼볼’이 3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하드록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이번에 맞붙는 팀은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어스다. 그런데 이들 팀이 맞서 싸워야 할 또 하나의 적이 있다.

대표적 휴양도시인 마이애미는 ‘악마의 유혹’이 늘 도사리는 곳이다. 술집과 클럽 같은 유흥가가 즐비하다. 결승전이 펼쳐지는 경기장에도 나이트클럽이 있다. 도심 곳곳에선 술과 마약, 매춘이 선수들을 유혹한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최근까지 마이애미에서 최소 60명의 현역 NFL 선수들이 체포 또는 구금됐다. 평균 30~40명인 애틀랜타나 뉴욕, 피닉스 등의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마이애미는 정신줄을 놓게 만드는 곳이다. 여기선 어디든지 갈 수 있기 때문에.” 2012년 슈퍼볼에서 뉴욕 자이언트팀의 우승을 이끈 풋볼선수 앤트럴 롤의 고백이다.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얘기는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각 팀의 코치진이 초긴장할 수밖에 없다. 선수들은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받았을 터다.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여건은 독에 가깝다. 자유를 부여하는 것 같지만 방종을 더 부추긴다. 제멋대로 살다가 추락한 인생을 우리는 여기저기서 목격한다. 비뚤어지기 쉬운 인간을 위해 신은 시시때때로 경고를 보낸다. 부모가 자식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선배가 후배를 향해 던지는 따끔한 충고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경고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의 선물’이 될 수도, 또는 ‘비극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의 확산 초기부터 회자되는 동영상이 있다. 일찌감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고한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빌 게이츠의 강연 내용이다. 그는 3년 전 독일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테러리스트가 바이러스를 악용할 경우 수억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새로운 백신을 빨리,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고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 발병 당사국인 중국 내에서도 10개월 전 신종 코로나의 출현을 ‘콕’ 집어 예상했다. 중국과학원 산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연구팀이 지난해 3월 국제 학술지를 통해 “새로운 바이러스가 또 박쥐에서 출현할 것이다. 조사가 시급하다”고 경고한 것이다. 중국과학원은 국립 자연과학연구소로 중국 최고의 학술기관이다.

잇따른 경고가 치밀한 대비로 이어졌더라면 피해 규모는 훨씬 줄었을 텐데,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경고를 무시하는 행태 속에는 태초부터 비롯된 인간의 본성이 깊이 배어 있다. 교만함이다. 절대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눈앞에 둔 하와가 유혹에 넘어가게 된 건 뱀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피조물이 조물주처럼 되고 싶은 우쭐한 마음에 경고를 무시하고 말았다.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신종 코로나는 또 다른 걱정거리를 낳고 있다. 경제를 또다시 불확실성의 블랙홀 속으로 빨아들이는 형국이다. 수출의 25%, 관광객의 35% 가까이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선 충격파가 크다. 벌써부터 썰렁해진 식당과 유통 매장의 모습은 내수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경제 기초 체력으로 꼽히는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지는데, 하락세를 더 부추기는 건 아닌지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무엇보다 감염병 확산 저지가 급선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기업과 가계, 남녀노소 모두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그러려면 협력하고, 신뢰하고, 배려해야 할 게 많아진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들이다. ‘이번 사태로 한국 사회가 다시 품어야 할 가치는 이것’이라고, 우한에서 온 또 하나의 경고쯤으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

박재찬 경제부 차장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