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당층 증가가 의미하는 것

입력 2020-01-31 04:01
설 연휴 직후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각각 30%대와 20%대로 동반 하락한 가운데 무당층이 10%를 넘겼다는 결과가 나왔다. 민주당과 한국당 가운데 한쪽 지지율이 떨어지면 다른 한쪽이 오르는 종전의 양상과 달리 양당이 동반 하락한 것이다.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하는 정부 여당, 혁신 없이 반사이익만 노리는 야당, 그리고 이런 두 당이 진영 싸움만 벌이고 있는 데 대해 실망한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도 세력이 많은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고 사회적 안정을 이루는 완충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중도 세력들의 요구를 담아낼 그릇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여야가 극단적인 대립을 할수록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마음을 둘 데가 없어진다. 민주당이 친문 세력에게 장악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분위기인 반면, 한국당은 야권 통합을 추진하면서도 반문 연대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친문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과 당 운영도 문제지만 혁신적인 가치와 대안, 비전 제시 없이 탄핵 전으로 돌아가는 반문 연대도 의미가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치 활동을 재개한 안철수 전 의원이 진영 정치에서 벗어난 실용적 중도 정치를 표방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할 정치적 역량과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실용적인 중도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갈망이 만들어 낸 안철수 현상에 힘입어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 등 제3지대 정당을 만들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지 세력과 조직도 협소해졌다.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신당을 창당할 예정이나 4·15 총선을 앞둔 이합집산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뚜렷한 비전과 정책, 정치력이 필요하다. 그가 말한 “행복한 국민, 공정한 사회, 일하는 정치” 같은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구호로는 어림도 없다. 제3지대에서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거대 양당에 수렴된다. 지역으로, 이념으로, 계층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양 극단의 정치는 차라리 쉽다. 양 진영의 강고한 기득권을 깰 정도의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동시에 유권자들의 책임과 역할도 중요하다.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욕구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중도에 대한 갈망은 반드시 투표로 나타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는 21대 국회도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조국 사태와 같은 진영 싸움만 반복될 것이다. 유권자들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