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감이 통통 튄다… 신인 작가 드라마 뜨는 이유

입력 2020-01-31 04:01
‘스토브리그’

‘스토브리그’ ‘블랙독’ ‘검사내전’…. 방송사도 내용도 다 딴판인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뛰어난 몰입감과 트렌디한 소재로 호평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꼼꼼한 자료조사와 여성 서사 등 대중의 요구를 명민하게 포착한 줄거리로 무장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들 사이엔 신선한 공통분모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신인 작가들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중견 못지않은 쫀쫀한 극본을 뽐내는 신인 작가의 약진이 두드러진 건 지난해부터였다. 대표적으로 ‘동백꽃 필 무렵’(KBS2)의 임상춘 작가가 있다. 2016년 ‘백희가 돌아왔다’로 브라운관에 데뷔한 3년차 새내기였던 그는 싱글맘 소재와 수십 개의 캐릭터를 유려하게 배치하는 필력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최근 프로야구 구단 얘기를 박진감 넘치게 풀어내 사랑받는 스토브리그 이신화 작가 역시 신인이다. 극작과를 나와 ‘지식채널e’(EBS) 등 교양과 드라마 보조작가로 일했던 그는 근래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실제 야구팀, 야구학회 등을 돌며 꼼꼼히 취재해 대본을 집필했다고 전했다. 동명 에세이를 다듬은 검사내전(JTBC)의 서자연 이현 작가도 신인급이다.

‘검사내전’

그렇다면 이처럼 신예들 작품이 강세를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로 실제 경험이 녹아든 사실감 넘치는 대본이 첫손에 꼽힌다. 오랜 시간 작가로만 활동한 중견과의 차별점이기도 한데, 기간제 교사의 치열한 삶을 묵직하게 담아낸 ‘블랙독’(tvN)의 박주연 작가는 3년여간 교직에 몸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백화점의 로열층 전담팀을 소재로 한 오피스물 ‘VIP’(SBS)의 차해원 작가도 과거 대기업에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경향은 과열된 콘텐츠 시장의 현황도 반영된 결과다. 한정된 작가 풀을 벗어나 좋은 작가와 대본을 발굴하려는 방송사와 제작사의 노력이 치열하다. 신인 육성 사업도 활기를 띠고 있는데, CJ ENM이 2017년 만든 창작자 지원사업 ‘오펜’이 그런 사례다. 블랙독 박 작가를 비롯해 ‘왕이 된 남자’(tvN) 신하은 작가, ‘나쁜 형사’(MBC) 강이현 작가 모두 이 오펜 프로젝트 1기 출신이다.

‘블랙독’

전문가들은 내로라하는 베테랑 작가들의 작품이 얼마간 예상 가능해졌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일례로 tvN에서 14%(닐슨코리아)대 시청률로 인기몰이 중인 박지은 작가의 ‘사랑의 불시착’은 작가의 전작들과 캐릭터와 구성 등이 유사하다는 지적이 일었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유명 작가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춘 탁월한 필력의 소유자들이지만, 요즘처럼 새로움이 중요해진 콘텐츠 환경에선 그들의 ‘스타일’이 자칫 자기복제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했다. 배우들도 극본만 좋다면 신인 작가와 중견 작가를 가리지 않는 추세인데, 신예 김루리 작가가 쓴 ‘하이에나’(SBS)에는 김혜수 주지훈 등 굵직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드라마 업계는 신예들과 새 활로를 모색 중이다. 한 중견 제작사 대표는 “스타 작가의 회당 고료는 대개 5000만원에서 많으면 1억원에 육박한다. 16부 미니시리즈 집필료가 기본 7~8억을 웃도는 것”이라며 “신인 작가를 발굴함으로써 제작비를 대폭 줄이고 개성 있는 작품으로 경쟁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