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가짜뉴스 판결’ 바로 읽기

입력 2020-02-01 04:06

법원의 판결문을 기사로 쓰는 건 까다로운 일이다. 전문적인 법률용어를 제대로 이해해서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해야 한다. 복잡하고 긴 판결문도 판결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핵심을 잘 요약해야 한다. 법원이 공보판사를 두고 기자들의 판결문 이해를 돕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22일 보도한 “‘가짜뉴스 표현 자체 나쁘다’ 법원의 엉터리 판결” 기사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교계의 반동성애 활동가들이 소송의 원고, 이들을 공격적으로 비판한 뉴스앤조이가 피고여서 판결문을 구해 읽어본 상태였다.

판결이 아니라 기사 자체가 엉터리다. “뉴스앤조이가 ‘가짜뉴스’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손해배상금을 물게 됐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재판부는 가짜뉴스 표현에 대해선 판단을 하지 않았다. 그다음 문장 “법원이 보도의 공익성과 허위 여부는 검토하지 않고 가짜뉴스 단어 자체를 인격권 침해라고 판단한 탓이다”도 틀렸다. 판결문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오히려 공익성을 감안하더라도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있다. 이번 판결문은 모두 4건이지만, 별지를 빼면 각각 7~12쪽으로 길지 않다. 핵심 판단 부분은 더 짧다. 문장이 장황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용어도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의역하거나 해석을 가미할 여지도 거의 없다. 판결문을 읽고도 이렇게 기사를 쓰고 제목을 뽑았다면 허위 왜곡 보도다. 자신들의 표현대로면 ‘가짜뉴스’다.

미디어오늘에 앞서 문제의 판결을 왜곡한 곳이 있다. 하루 전인 21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가짜뉴스 판단에 사실관계 무관하다는 법원, 공론장 민주주의 후퇴시켰다’는 논평을 냈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와 대동소이한 오류와 왜곡을 담고 있다. 판결문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들의 보도와 논평대로 재판부가 법리와 상식에 반하는 엉터리 판결을 했다고 믿을 것이다.

이번 판결은 지난 15일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는 뉴스앤조이가 김지연 약사, 유튜브채널 khTV, 비법인사단 GMW연합을 ‘가짜뉴스 유포자’ ‘가짜뉴스 유통채널’로 표현해 이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각 1000만원씩 총 3000만원을 손해배상하고 관련 표현을 삭제하라고 선고했다.

미디어오늘이나 민언련의 주장과 달리 재판부는 뉴스앤조이가 특정한 주장이나 콘텐츠를 가짜뉴스라고 표현한 데 대해선 판단을 하지도,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가짜뉴스가 남용돼 언론의 자유, 비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인 만큼 아쉬운 대목이다. 언론계에선 대체로 가짜뉴스를 ‘허위사실을 고의적·의도적으로 유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사 형식을 차용해 작성한 것’으로 정의한다. 허위 보도라고 해서 모두 가짜뉴스는 아니다. 고의성, 의도성이 있어야 하고 기사 형식을 차용해야 한다. 뉴욕타임스나 CNN이 오보를 냈다고, 힐러리 클린턴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비판했다고 가짜뉴스라며 공격하는 것은 트럼프식 용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진보 진영 언론들이 이런 식으로 가짜뉴스 프레임을 만들어 공격한다. 이번 사건 상급심에선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이 추가되길 기대한다.

재판부가 문제 삼은 것은 ‘가짜뉴스 유포’ ‘가짜뉴스 유포자’ ‘가짜뉴스 유통채널’이라는 표현이다. 콘텐츠나 주장 자체가 아니라 그 주체를 문제 삼는 표현들이다. ‘거짓말’과 ‘거짓말쟁이’처럼 둘은 다른 표현이다. 재판부는 이들 표현이 인격권과 명예를 침해한다고 봤다. 먼저 “원고들이 내놓은 주장의 진위성이나 당부를 보도한 것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원고를 가짜뉴스 유포자라고 표현한 것은 원고의 주장에 대한 일반인의 전반적인 신뢰를 저하시킬 의도가 담긴 공격적인 표현으로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위와 같은 공격적인 표현은 사회의 올바른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바가 없고, 오히려 원고를 허위사실 유포자로 낙인찍어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의 장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팩트 체크를 통해 진위 여부를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책임이다. 재판부가 우려하는 것은 ‘가짜뉴스 유포자’와 같은 낙인찍기가 가져올 부정적인 결과다. 민주적 토론과 언론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고 위축시킬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보수든 진보든 진영 논리에 빠져 상대방의 주장과 논거에 대한 합리적 토론을 회피하고 인신공격을 일삼는 세태에 대한 경종이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