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편든 트럼프 중동평화구상… 펄펄뛴 팔, 즉각 “거부”

입력 2020-01-30 04:01
마무드 아바스(오른쪽)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이 28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있는 PA 행정수도인 라말라에서 TV연설을 통해 미국의 새 중동평화구상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며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되 동예루살렘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내용의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다. 미국은 공정한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준 편향된 구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팔레스타인은 “1000번이라도 거부하겠다”며 즉각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다. 그는 “양측에 유익한 윈-윈(win-win)”이라고 주장했지만 구상안 세부 내용은 이스라엘에 유리하다는 게 주요 외신들의 분석이다. 양측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이스라엘의 요구를 들어줬다는 것이다. AP통신은 “트럼프의 새 제안은 이스라엘을 웃게 하고 팔레스타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을 영토로 편입하기 위해 애써왔다. 해당 지역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후 불법 점령했다가 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세워진 곳이다. 유엔은 유대인 정착촌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의도적으로 서안에 정착촌을 늘려왔다. 협정 당시 10만명 정도였던 유대인 거주자는 현재 40만명으로 늘어났다.

미국은 유대인 정착촌의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향후 4년간 새 정착촌을 건설하지 못하도록 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모든 종교인의 참배를 보장한다면서도 이스라엘이 보호조치를 이어나가도록 했다. 이스라엘에 성지 통제권을 부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수도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루살렘을 분할하고 서안·가자지구에 완전한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세우도록 하자는 국제사회의 ‘2국가 해법’ 기조와 어긋난다.

팔레스타인에는 동예루살렘의 일부 아랍인 거주지역을 수도로 해서 정식 국가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국가 건설과 대사관 설립에 500억 달러(약 58조7350억원)의 국제금융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사실상 영구적인 안보 주권 포기를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구상안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국가 지위를 가져도 상비군을 보유할 수 없고,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정파도 해체시켜야 한다. CNN은 “팔레스타인 영토에 동예루살렘의 핵심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번 구상을 주도한 인물들의 배경도 논란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 데이비드 프리드먼, 미국의 중동평화협상 특사였던 제이슨 그린블랫은 모두 유대계로 구상안을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설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들과 요르단강 서안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국이 2017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이래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구상안에 분노를 표시했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은 “예루살렘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민족은 미국의 구상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하마스는 무장투쟁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구상에 대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제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