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한 교민 격리 장소 변경으로 불신 자초한 정부

입력 2020-01-30 04:01 수정 2020-01-30 13:42
주민들 반발한다고 장소 바꾼 것은 공포심에 날개 달아준 셈…
시민들도 중국에 대한 비이성적 혐오 자제해야


중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에 대한 우려가 국내에서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지난 27일 네 번째 확진자 발생 이후 추가로 나오지 않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듯한 상황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이 긴밀한 협조로 방역망을 구축하고 시민들도 예방 수칙을 지켜 확산을 막아야 한다. 방역 당국은 선제적이고 신속한 대응과 투명한 정보 공개 등을 통해 시민들의 불안감을 덜어줘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당국을 믿고 방역에 협조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세기로 국내 송환되는 우한 지역 교민과 유학생들을 임시 수용할 장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혼선은 아쉽다. 정부는 28일 교민 송환 대책을 발표하는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등 2곳을 임시 보호 시설로 활용한다는 내용의 발표문을 사전 배포했지만 29일 장소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변경했다. 천안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장소를 변경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덜어줘야 할 정부가 오히려 공포심에 날개를 달아 준 셈이다. 송환될 700명가량의 교민 등은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최대 잠복기인 2주간 격리된 가운데 의료진의 철저한 관리를 받기 때문에 인근 지역에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했는데 당장 화살을 피하자고 장소 변경이라는 악수를 뒀다. 아산과 진천 주민들도 반발해 우한 교민 수용 장소 문제는 지역 갈등으로 비화됐다. 지역 이기주의 행태를 보인 주민들도 문제지만 안이한 대응으로 방역에 불신과 혼선을 키운 정부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신종 코로나에 대해 국민이 경각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확산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나친 공포심은 정상적인 방역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 감염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중국 관광객이나 중국 동포들을 비난하는 것은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2003년 같은 코로나바이러스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세계적으로 창궐했을 때 확진자 4명(사망 0명)으로 방어했던 경험이 있다. 정부의 정교한 대응과 시민들의 협조로 이번에도 확산 차단에 성공하는 사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