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갇힌 100살 노인, 생일 앞두고 왜 탈출 했을까

입력 2020-01-30 04:05 수정 2020-01-30 15:27

2005년 스웨덴, 100살 생일을 앞둔 한 노인이 요양원을 ‘탈출’한다. 그것도 잠옷 바람으로. 문이 아닌, 창문으로. 노인의 이름은 알란. 그는 왜 안락한 요양원을 나서야만 했던 걸까.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 오르는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사진)은 이토록 도발적인 장면으로 운을 뗀다.

제목이 암시하듯 전 세계에서 1000만부 이상 팔린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극이다. 요양원을 떠난 알란이 갱단의 돈 가방을 우연히 손에 쥐며 벌어지는 모험담과 그가 살아온 100년의 세월이 시종일관 유쾌하고 빠른 호흡으로 번갈아 펼쳐진다. 강대국이 눈독 들이는 화약 기술을 지닌 알란은 스탈린 장제스 처칠은 물론 김정일 김일성 등 역사적 인물들과 조우한다. 픽션과 사실이 버무려진 일화들이 이어진다. 가령 미국은 알란 덕에 핵폭발 열쇠를 찾았고, 중국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 승리에는 알란의 기여가 있었다는 식이다.

이 극이 특별한 건 기발한 작법과 연출로 원작에 새로운 매력을 묻혀내서다. 공연계 메가 트렌드인 젠더 프리 캐스팅이 이뤄졌다. 60여개 캐릭터를 배우 5명이 연기하는데, 배우들은 이름표를 바꿔 달면서 눈 깜짝할 새에 톤이 다른 수십 명의 인물을 제 것인 양 소화해낸다. 심지어 코끼리 같은 동물까지. 배해선 오용 등 베테랑의 노련함과 젊은 배우들의 열정이 시너지를 낸다. 여기서 극의 남다른 유머러스함과 속도감도 만들어진다.

그래도 극의 백미는 역시 알란의 파란만장한 삶이 던지는, 눈으로 보니 더 강렬한 메시지일 듯하다. 종교나 사상에 얽매이지 않는 떠돌이 알란이 바란 건 그저 “맛난 술과 음식, 즐거운 대화를 나눌 친구”였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알란이지만, 여러 친구와 고락을 함께한 그의 삶은 누구보다 부유했다. 모든 게 정해진 양로원은 감옥과 다름없었다.

알란은 결국 요지경 인생 속 활짝 열린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예찬인 셈이다. 그가 늘 쥐고 있는 성냥과 어디로 튈지 모를 불꽃도 규정지어질 수 없는 모든 삶의 은유다. 극이 주거난과 취업난 등 삶의 불안에 떠는, 그래서 가능성이 되레 두려워진 관객과 공명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알란은 140분간 펼쳐지는, 100년의 모험을 통해 말한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니” 너무 두려워 말라고. 문이 굳게 닫혀있다면, 창문을 열고 한 번 더 나서보라고. 다음 달 2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