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수를 건너기 위해선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른 집에 들어가서 유월절 어린양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그 집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 양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할례를 받아야 했다.(출 12:48)
그런데 성경은 집에 들어온 사람 중 유대인 외에 애굽에 살았던 다양한 민족이 있었다며 그들을 잡족이라 말한다.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하였으며.”(출 12:38)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는데, 양고기를 먹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끔찍한 할례의 고통을 겪을 바에야 차라리 양을 먹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할례받지 않은 무리가 훗날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출애굽기에서 잡족이라 부르는 이들을 민수기는 ‘섞인 무리’라고 기록한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민 11:4) 이들은 애굽의 음식이 먹고 싶어 할례받은 백성들을 선동했다.(민 11:5~6) 결국 1세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섞인 무리가 많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교회 나오면 축복받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며 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아내의 성화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나오는 사람, 선거 때만 되면 철새처럼 찾아오는 정치인들 말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하면 상당히 당황한다.
이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다 교회 생활에 어려움이 생기면 시험 들었다며 떠난다. 말씀으로 훈련받자고 하면 힘들다고 한다. 이들은 찬송보다 유행가에 은혜를 받고 예배보다 친구와의 만남을 즐겨한다. 영적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할례란 무엇을 의미할까. 성경에서는 ‘세상 옷을 벗는 것’을 뜻한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1)
그래서 목회자는 할례받는 방법을 깨닫고 그들을 훈련해야 한다. 그 방법은 신명기 30장에 나와 있다. 할례를 받게 하기 위해선 제일 먼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케 해야 한다.(신 30:2)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말씀은 양날 선 검이 돼 우리 마음에 있는 세상을 끊어버리게 한다.(히 4:12) 결국 우리 마음에서 세상의 영을 끊어내는 것은 말씀뿐이다.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가면 할례가 된다고 신명기에서 말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신 30:6)
우리 마음에 할례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부터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주님이 예비하신 생명을 얻게 된다.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마태복음을 보면 할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다.(마 6:33)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의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뿐이다. 죄가 의로 되려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너희가 예수를 믿고 제일 먼저 구할 것이 ‘의’라고 말할 때 그 의는 죄 사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는 사역의 문제보다 죄 사함의 문제다. 영혼이 전도돼 교회에 나오면 목회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도로 하여금 죄 사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에 천국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성도의 심령에 임하는 죄 사함의 기쁨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죄 사함을 받고 마음에 천국이 이뤄지면 교회에 나와 봉사하고 헌신하고 죽도록 충성하면서도 원망과 불평이 없어진다.
그래서 영적 ‘할례’를 위해 찬송을 외우게 했다. 찬송가 20곡을 외우면서 매일 찬양의 삶을 살아가도록 할 때 그들의 생각 속에 자리 잡은 세상 영이 떠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와는 관계가 없었다. 모세오경 훈련을 통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을 단순하게 만들어 그것을 반복적으로 단순하게 지속적으로 훈련했다.
그렇게 하자 성도들의 마음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스스로 누군지를 깨달으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다. 회개가 일어나고 죄에 대해 애통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성령이 임하고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순복음삼마교회에서는 10년 전부터 매주 반복해서 성경 훈련을 받는 성도가 500~600명이 된다. 이 훈련은 코스도 아니고 졸업도 없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 섬기는 자가 될 때까지 반복해서 한다. 그래서 구호도 “우리는 죽을 때까지 훈련한다”이다.
우리가 밥을 먹지 못하면 육신의 죽음이 오듯,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양식을 먹지 못하는 순간 영혼의 등불이 꺼지기 시작한다. 할례받지 못하면 군사가 되지 못하고 군사가 되지 못하면 가나안 땅을 점령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기둥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훈련에 집중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