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의 명동거리로 불리는 평택역 앞 오거리와 중앙로 일대. 이곳 한복판에 자리 잡은 아가페국제교회(정철원 목사)는 평택을 찾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사랑방으로 통한다. 고향을 떠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타국에서 만난 가족처럼 따뜻한 손길을 내주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교회를 찾았을 때도 정철원(49) 목사는 어려움을 겪는 이웃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1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서 일거리가 끊겼어요. 인도에 두고 온 아내와 딸에게 생활비를 보내줘야 하는데 제 생활이 막막해졌으니….”
인도 카슈미르에 살다 3년 전 한국에 온 데브라즈(56)씨에게 공장 작업장은 작은 천국이었다. 매일 통조림 캔을 상자에 담고 포장하는 일을 하며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문량이 떨어져 공장 운영에 차질이 생기면서 그는 출근을 멈춰야 했다. 정 목사는 데브라즈씨를 예배당 한 층 위 쉼터로 안내했다. 당분간 그의 거처가 돼 줄 공간이었다.
건물 외벽엔 단출하게 아가페국제교회라고 새겨진 간판 하나뿐이지만 그 안에서 이뤄지는 사역은 버라이어티하다. 3층 예배당에선 매주 파키스탄 이란 인도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알제리 방글라데시 등 10여개 국에서 온 국내 거주 외국인 100여명이 예배를 드린다. 예배 후엔 한 층 아래 모임 공간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고 교제를 나눈다. 4층은 데브라즈씨처럼 긴급하게 거처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쉼터다. 정 목사는 “가장 많을 땐 30명까지 머물렀는데 지금은 12명이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시절 영문학을 전공한 그의 꿈은 인도에서 선교사로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대원에서 공부할 때 서울 대림동 아가페외국인교회(신동호 목사)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해외 선교 사역 현장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향한 선교 활동도 갈급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2003년 8월 평택에 교회를 개척할 때만 해도 외국인 예배를 따로 드리는 교회는 더러 있었지만 100% 외국인 사역에 집중하는 교회는 한 곳도 없었어요.”
그는 “국내 거주 외국인 사역은 기본적으로 필요를 채워주는 것으로 씨를 뿌린다”고 했다. 대다수가 사회보장의 울타리 밖에 있다 보니 병원 진료, 근로 계약 및 법률 자문 등이 필요할 때 막막한 상황을 맞닥뜨리기 일쑤다. 성도들의 가정보다는 출입국사무소 법원 병원 일터가 심방 장소인 이유다.
정 목사는 “평일 오전 오후엔 성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며 “법률 조항을 세세하게 알진 못해도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증명서 발급 절차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준전문가가 됐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평생을 무슬림 불교도 힌두교도로 살아온 이들에게 복음이 심어질 수 있는 건 절체절명의 순간 찾아온 도움과 섬김의 역할이 컸다”고 덧붙였다.
저녁이 되면 교회는 한글과 성경을 공부하는 학교로 변한다. 화요일과 토요일엔 각각 이란인 성경교실과 다국적 성경교실이 열린다. 수요일엔 영어와 힌디어 예배, 금요일엔 영어 예배와 철야기도회가 이어진다. 교회 안에서 갈고 닦은 신앙은 교회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매주 목요일 오후엔 서울 명동에서 거리 전도를 펼치고 토요일엔 지역 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평택역 앞에서 찬양전도를 진행한다. 정 목사가 보여준 6면짜리 전도지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죄와 구원, 복음에 관한 내용이 6개 국어로 정리돼 있었다.
정 목사는 “최근 4~5년 사이 평택 지역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며 “특히 정치적 불안정성과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무슬림들의 증가는 하나님이 이 땅에 주신 기회”라고 강조했다. 18년 차 국내 거주 선교사로서 현상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이주민 사역 초기에는 그 대상이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였다면 이후엔 국제결혼, 유학생들로 범주가 넓어졌습니다. 입국 경로와 국적도 다양해졌지요. 그다음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난민입니다. 이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도록 선교의 패러다임이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개척 초기엔 아무리 노력해도 기대할 수 없었던 선교 열매도 최근엔 부쩍 증가했다. 개종 후 세례를 받는 성도 수가 차츰 늘어 2년 전 세례식 때는 46명이 세례를 받았다. 그중 10명 정도가 무슬림이었다. 본국으로 돌아가 복음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성도들도 많다.
정 목사는 “하나님을 영접한 뒤 귀향해 가족들을 전도하고 있는 이란 성도, 수대째 불교 가문이었던 가족을 전도한 후 온 가족이 전도자로 사는 스리랑카 성도 등 현지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감격스럽다”고 했다. 선교지로서의 대한민국에 대한 현실에 대해선 아쉬움을 전했다.
“여전히 선교에 대한 시선은 해외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인 대한민국에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대하고 계실 겁니다. 이제 그 기대에 부응할 때입니다.”
평택=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