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퇴진 요구 거절… 안철수 ‘당 리모델링’ 무산 위기

입력 2020-01-29 04:06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무너진 사법정의를 논하다’ 간담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오른쪽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손 대표는 안 전 대표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요구를 거부했다. 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을 재건하겠다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구상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내가 당대표를 할 테니 너는 물러나라’는 식의 제안에는 응할 수 없다며 ‘안철수 비대위’를 거부했다. 다만 손 대표로서는 바른미래당을 살리려면 안 전 대표가 필요하고, 안 전 대표도 독자적인 신당 창당에 따른 리스크가 커 막판 중재 가능성은 남아 있다.

손 대표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안 전 대표의 퇴진 요구를 ‘당권 투쟁’으로 규정하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손 대표는 “안 전 대표가 많은 기자와 카메라를 불러놓고 저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일방적 통보를 했다. 소위 최후통첩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며 “개인 회사의 오너가 최고경영자(CEO)를 해고 통보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번도 안철수가 오면 조건 없이 물러난다는 말을 제 입으로 한 적 없다”며 “안 전 대표가 당원으로서 요구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그걸 다 들어줄 거란 말이었다”고 덧붙였다.

손 대표는 전 당원 투표로 재신임 여부를 묻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손학규 나가라’는 수단으로 당원 투표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손 대표가 안 전 대표의 제안을 모두 거부함에 따라 안 전 대표의 운신의 폭도 좁아지게 됐다. 당초 계획이 바른미래당을 리모델링해 실용적 중도정당을 만들겠다는 데 있었던 만큼 이제는 독자적인 신당 창당 수순만이 남게 됐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안철수계 전원과 호남계·당권파 의원들을 포함한 12명의 바른미래당 의원과 오찬 회동을 했다. 사실상 ‘안철수 비대위 체제’에 힘을 실어 달라는 취지의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일부 안철수계 비례대표 의원들은 손 대표 퇴진이 불가능할 경우 신당 창당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창당과 총선 준비에 상당한 수준의 인적·물적 자원이 필요해 안 전 대표도 섣불리 신당 창당 의사를 밝히진 않고 있다. 4월 총선까지 2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른미래당의 ‘현금 실탄’도 안 전 대표의 독자적인 신당 창당을 주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안철수계 의원 7명 중 6명이 비례대표라 당의 제명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창당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안철수 신당’이 나온다 하더라도 예전만큼의 파괴력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 당권파인 임재훈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창당 선언을 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예전 같은 위세였다면 안 전 대표 귀국 당시 2000명은 나왔어야 했는데, 200명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따라 신당 창당이 난립하고 있다는 것도 악재다.

호남계 의원들은 막판 중재에 나섰다. 이들은 ‘손학규 체제’와 ‘안철수 신당’에 모두 반대하며 외부 인사로 중립 비대위를 꾸리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와 손 대표 모두 2선으로 후퇴하는 안이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손 대표와 회동한 호남계·당권파 의원들은 29일에는 안 전 대표를 만날 예정이다. 호남계인 김동철 의원은 “손 대표와 진지한 이야기를 했고, 공표할 수 없지만 제안한 것도 있다. 손 대표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며 “안 전 대표에게도 최종적인 의사를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심우삼 김용현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