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가 꺼져 가던 ‘트럼프 탄핵’ 정국에 존 볼턴(사진)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볼턴 전 보좌관이 오는 3월 출간할 회고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군사원조와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수사를 연계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뉴욕타임스(NYT) 보도가 기폭제가 됐다. NYT 보도는 기밀 유출 논란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여당인 공화당에선 내부 분열 조짐이 일고 있다. 공화당 소속이면서 ‘반(反)트럼프’ 노선인 밋 롬니 상원의원은 27일(현지시간) “다른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볼턴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합류할 가능성이 점점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수잔 콜린스 상원의원도 “볼턴 책에 대한 보도들은 증언 필요성을 강화시키고 공화당 상원의원들 사이에 많은 대화를 촉발시켰다”고 밝혔다.
공화당은 상원 탄핵심리에서 새로운 증인 채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100석인 상원은 공화당 53석, 민주당 45석,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2석으로 구성돼 있다. 증인 소환 안건이 통과되기 위해선 공화당에서 4명의 이탈표가 필요한데 4명 이상의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탈 가능성이 높은 공화당 상원의원으로는 롬니와 콜린스에 이어 리사 머카우스키, 라마 알렉산더 상원의원이 거론된다고 NBC방송은 보도했다. 머카우스키 상원의원은 “나는 전에 볼턴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면서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고 가능성을 열어놨다. 알렉산더 상원의원은 “양측 주장을 다 들어본 뒤에 결정하겠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팻 투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선호하는 증인을 한 명씩 추천하는 중재안을 제안했다.
볼턴의 증인 채택이 성사되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입장에선 1차 둑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더 큰 고민은 볼턴이 상원 탄핵심리에서 핵폭탄급 폭로를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어서 탄핵이 현실화될 확률은 여전히 낮지만 볼턴의 입이 탄핵 정국을 뒤흔드는 허리케인으로 커져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NYT에 보도된 볼턴의 회고록 내용이 기밀 유출이라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전직 고위 관리로서 기밀 유출 방지를 위해 회고록 출간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사전 검토를 받아야 하는데 그전에 초고가 언론에 유출됐다는 것이다. 볼턴 전 보좌관과 NSC 양측 모두 NYT에 초고를 유출하지 않았다면서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앞서 NYT는 지난 26일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초고를 보도했지만 어떤 경로로 초고를 입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볼턴 전 보좌관은 지난해 12월 30일 NSC 기록물 관리 담당자에게 초고를 보내 검토를 요청했다.
NYT의 볼턴 전 보좌관 회고록 보도가 미친 파장을 감안하면 초고 유출 경로 규명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볼턴 전 보좌관과 NSC 둘 중 하나가 트럼프 대통령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조성은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