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고등학교에 애국가 4절까지 울려퍼진 이유

입력 2020-01-30 00:06

미얀마 학교 건립 사업에 뛰어든 것은 12년 전 일이다. 2008년 중국 쓰촨성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약 20만명이 희생됐다. 당시 1만명의 세무사 회원들로 구성된 한국세무사회 회장으로 재직할 때다. 회원들이 모아준 3만 달러를 갖고 중국 베이징에 가서 성금으로 전달하고 왔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미얀마에 ‘나르기스’라는 대형 쓰나미가 옛 수도 양곤을 강타했다. 바닷가에 인접한 양곤 남쪽 지역은 폐허가 됐다. 8만여명이 희생됐다. 안타까운 것은 쓰나미를 피한 어린 학생들이 교실이 없어 뜨거운 햇볕 아래 맨땅에서 공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뜻있는 회원들이 “여기도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하는데 우연히 15년간 그곳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던 김병천 선교사와 연락이 닿았다. 그분의 강력한 요청으로 환경이 가장 열악한 딴린 지역 제3고등학교에 건물 한 동을 짓기로 했다.

4개월 공사에 2만5000달러, 당시 한화로 3000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회원들과 상의 후 만장일치로 학교건물을 지어주기로 했다. 3개월 후인 2009년 초 현지에 가서 준공식을 했다. 삼성과 LG로부터 컴퓨터 10대를 기증받아 설치했다. 1400여명의 학생들과 50여명의 선생님들이 우리 일행을 진심으로 환영해 줬다.

미얀마 국가를 구성하는 8개 종족 자녀들이 각각 고유의 전통 의상을 입고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내년에도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맨땅에서 공부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린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모습들을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 지역과 인연이 시작됐다. 그 후 매년 초가 되면 이곳에 들러 학교 건물 한 동씩을 지었다. 4년간의 회장 직책을 내려놓은 뒤엔 부득이 내가 설립한 석성장학회에서 이어받았다.

네 번째 학교 건물을 지을 즈음에 이곳 학교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애원하는 게 있었다. “마시는 물 사정이 너무 좋지 않으니 수질이 좋은 지하수를 마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래서 즉석에서 약속하고 1년 후 물 문제도 해결했다.

2만여평이나 되는 학교 운동장에 담장이 없다 보니 학교 운동장은 마치 이 지역 주민들의 쓰레기 처리장 같았다. 그래서 반듯하게 학교 울타리도 쳤다. 여기에 컴퓨터도 10대를 더 보충해 양곤 시내 컴퓨터 시범학교로 만들었다.

5년이 지날 때쯤 학교 건물도 어느덧 정비됐다. 다섯 번째 학교 건물 준공식 때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네요.” 그때 이 학교 육성회장이라는 분이 벌떡 일어서서 큰소리로 항변했다. “당신이 믿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도 안 오실 것입니까.”

정말 깜짝 놀랐다. 나는 아직도 그분의 외침을 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다. 그래서 지금껏 매년 한 차례씩 그 학교에 들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있다. 그동안 학교 건물 8동을 지었다. 그렇게 했더니 2018년 그 지역 주민들과 학교 당국의 허락으로 ‘대한민국 석성고등학교’라는 학교 간판까지 걸게 됐다.

준공식 행사 때 미얀마 국가를 부른 다음 우리나라 애국가를 불렀다. 그것도 4절까지 힘껏 불러주는 게 아닌가. 학교는 형식상 미얀마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미얀마 고등학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한민국 석성고등학교가 됐다.

지난달에는 660㎡(200평) 규모의 체육관까지 건축했다. 1400여명의 학생들이 우리나라 태권도를 비롯해 한글까지 함께 배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석성고등학교를 통해 머지않아 미얀마 양곤 지역에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있다.

무엇보다 인구 5200여만명 중 개신교인의 비율이 6.5%에 불과한 미얀마에서 명실상부한 복음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작은 계기로 시작된 나눔이 이처럼 복음 전도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조용근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