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7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만나 당을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면서 자신이 비대위원장을 맡겠다는 뜻을 밝혔다. 손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안 전 대표는 독자 신당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안 전 대표 측이 신당 창당을 위한 실무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이르면 이번 주 내에 신당의 구체안이 나올 전망이다.
손 대표는 국회에서 안 전 대표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안 전 대표가 비대위 구성을 제안했고, 비대위 구성에 대해서는 본인에게 맡겨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28일 바른미래당 의원들과 오찬 모임이 있을 때까지 답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 측은 비대위원장을 안 전 대표에게 맡기거나 전 당원 투표로 정하는 방안, 전 당원 투표에 의한 조기 전당대회 개최로 새 지도부 선출, 손 대표 재신임 투표 실시 등 3가지 방안을 손 대표에게 제시했다고 밝혔다.
안 전 대표의 제안은 손 대표에게 당권을 내려놓으라는 요구다. 손 대표는 그간 “모든 것을 양보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대표직 사퇴 여부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손 대표는 안 전 대표의 제안에 대해 “검토해보겠다”면서도 “예전에 유승민계에서 했던 이야기와 다른 부분이 거의 없다. 지도체제 개편을 해야 하는 이유나 구체적인 방안이 없었고, 왜 자신이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없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비쳤다. 안 전 대표 측에서도 “손 대표가 지금까지 보였던 애매모호한 태도로 요구를 뭉갤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만약 손 대표가 요구를 수용한다면 바른미래당 기반의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질 텐데, 이 경우에는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호남계와의 통합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난 24일 안 전 대표와 만난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호남계 정당과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안 전 대표가 확답은 하지 않았다”면서도 “호남 민심이 ‘더불어민주당 심판’인 만큼 모두 힘을 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안철수계 의원은 “호남계 정당이 또다시 안 전 대표를 이용하려고 하는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며 “기존 정치 문법이나 세력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안 전 대표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총선용 통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가 “관심 없다”고 한 보수통합 논의는 다음 달 중순 신당 창당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다만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만 참여하는 ‘소(小)통합’에 그친다면 파장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무소속인 원희룡 제주지사와 이언주 의원 등이 참여를 확정한 상태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유승민당과 통합하기 위해 한국당을 해체하고 태극기를 버리고 좌클릭 신당을 창당하는 데 반대한다”며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가 참여하는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한국당과 유승민당은 서로 자기들만 살기 위해 계산하기 바쁘고 태극기 세력은 조원진당, 홍문종당, 김문수당으로 핵분열했다. 결국 총선은 각개전투로 치르고 총선 후 ‘헤쳐 모여’로 재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