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주인공 ‘로테이션 축구’ 새 지평 열다

입력 2020-01-28 04:01
한국 23세 이하(U-23) 남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26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꺾고 사상 첫 대회 우승에 성공한 뒤 시상식에서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김학범호의 가장 큰 특징은 주전-비주전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에서 김 감독은 매 경기 선발 선수를 과감히 교체하는 ‘로테이션 축구’를 선보이며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흔히 축구에서 말하는 ‘베스트 11’ ‘벤치 멤버는 전력 외’라는 기존의 통념은 김학범호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감독의 믿음 속에 무명의 선수들은 누가 나서도 제 몫을 다하며 원팀으로 뭉쳤다. 김 감독의 과감한 용병술이 한국축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결승에 올라 이미 9회 연속 올림픽 진출을 확정지었던 한국은 26일 사우디아라비아전 승리(1대 0)로 2014년 창설된 이 대회 4번째 출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조별리그부터 토너먼트까지 6전 전승, 참가국 중 최다 득점(10골) 우승이라는 완벽한 행보였다.

선수들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김학범 감독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이 ‘무결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로테이션 축구의 힘이다. 토너먼트 대회에선 통상 일찌감치 확정지은 베스트 멤버를 큰 폭의 변화 없이 끌고 가곤 했다. 주전과 비주전 선수들의 기량차가 없지 않기에 단기전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려면 확실한 주전을 계속 기용하며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게 ‘안전한’ 선택이어서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런 축구의 상식을 뒤엎었다. 한국은 매 경기 변화무쌍한 선발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조별리그 2차전부터 한국의 선발 라인업은 7명→6명→8명→5명→3명이 교체됐다. 이전 경기에서 최고 활약을 펼친 선수가 다음 경기에서 빠지는 일이 빈번했다. 골키퍼 후보 2명을 제외한 21명 전원이 그라운드를 밟으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선발을 고정하지 않은 전술은 상대팀의 전력분석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스트라이커 오세훈(상주)과 조규성(안양)이 번갈아 선발로 투입되며 2골씩 올렸고, 이동준(부산), 이동경(울산)까지 멀티골 이상 기록한 선수가 4명이나 된다.

이는 경기가 열린 태국의 환경적 변수와 부상 방지도 고려한 신의 한수이기도 했다. 대표팀은 30도가 넘는 기온에 40% 이상의 습도까지 덮친 무더위 속에서 3~4일 간격으로 치러지는 강행군을 견뎌내야 했다. 선수들을 많이 활용하면서 체력을 아낌에 따라 후반전, 심지어 연장전에서도 파상공세를 취한 계기가 됐다. 부상자들도 거의 없었다.

로테이션 성공으로 한국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2020 도쿄올림픽 출전권 획득은 물론 장차 A대표팀의 중추로 성장할 어린 선수들이 모두 큰 토너먼트 대회에서 뛰는 경험까지 얻었다. 김 감독도 우승 직후 “선수들 전원이 그라운드에 나와 뛰었음에도 팀에 아무 문제없이 녹아든 게 가장 값진 결과”라며 “특출난 선수가 없지만 한 발짝 더 뛰고 희생하는 원팀 정신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27일 “22세 이하 2명을 명단에 의무 포함시키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바뀐 규정으로 K리그 유스 선수들이 성장한 데다 대학·고교 선수까지 불러 테스트한 김 감독의 빈틈없는 준비와 용병술이 더해져 우승의 결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감독의 23세팀, 정정용 감독의 20세팀, 김정수 감독의 17세팀까지 모두 국제대회 성적을 낼 정도로 선수층이 업그레이드돼 앞으로 한국 축구 전망은 밝다”고 분석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