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 폐렴) 발원지인 우한시 정부가 사실상의 도시 봉쇄 조치를 내리자 시민들이 새벽에 도시를 탈출하려고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우한에서는 폐렴 환자들이 넘쳐나지만, 병실 등 의료시설이 부족해 애를 먹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트스(SCMP)에 따르면 우한시 당국이 23일 새벽 우한을 떠나는 항공편과 기차, 장거리 버스 노선을 임시 중단한다고 밝히자 한커우 역에는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수천 명이 몰려든 한커우 역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열차를 잡기 위해 짐을 들고 뛰기도 했고, 열차 내에는 거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회계사인 라이쉬안(25)씨는 이날 새벽 2시쯤 봉쇄령 소식을 읽은 남편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 5시에 기차역으로 간 뒤 오전 8시30분 후베이성 스옌으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그녀의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직원들에게 곧바로 우한을 떠나라고 지시했다. 최근 감염 우려 때문에 식당과 영화관 등 공공장소를 피해왔던 그녀는 “우한에서 당장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우한에서 일하는 추이 씨는 “온라인으로 표 구매가 안 돼 기차역으로 급히 달려가 고향행 표를 간신히 살 수 있었다”며 “이 도시에서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우한 폐렴에 감염된 환자가 400명을 넘어선 우한에서는 의료 시설이 부족해 환자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SCMP에 따르면 우한 폐렴 전담 병원으로 지정된 셰어 병원에는 전날 100여명의 환자가 진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폐렴 증상을 보였으나, 병실 부족 탓에 격리병동 입원이 허용되지 않았다. 55세 남성은 발열과 다른 증상이 있는데도 병실이 없으니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성의 친척은 “의사에게 입원하게 해 달라고 사정했지만 병실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전했다.
우한시의 다른 병원인 퉁지 병원에 있던 쉬모(31)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고열에 시달리다 격리병동에 입원했는데, 칸막이도 없이 11명의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쓴다고 전했다.
우한 시내는 외부와 차단돼 고립되면서 식품과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우한 시민들은 아침부터 마트나 상점으로 달려갔지만, 일부 상품은 동났고 계산대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고 중국경영망이 전했다.
웨이보에는 시민들이 대거 사재기를 한 탓에 채소 등 식품 진열대가 텅 빈 사진이 올라왔다. 불과 몇 위안인 배추 한 포기에 35위안(약 5000원)짜리 가격표가 붙은 사진도 화제가 됐다. 마트와 슈퍼마켓 등을 제외하고 쇼핑몰과 식당, 대로는 지금 텅 비어 “유령도시 같다”는 말이 나온다고 SCMP는 전했다.
우한 폐렴이 야생동물로부터 전염되는 것으로 추정되자 후베이성, 네이멍구자치구, 허난성 등 여러 지방정부들은 시장에서 야생동물과 조류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매체 펑파이는 “야생동물 요리를 먹는 것은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는 것”이라면서 “(우한 폐렴 사태는) 야생동물 요리를 사고판 사람들이 일으킨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위샤오화 독일 괴팅겐대 교수는 자신의 전염병 확산 모델을 거론하며 “우한 폐렴이 첫 발병 후 90일 전후인 오는 3월 초순 절정에 이르고 5월 초순에 막을 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