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권 이어 미국까지 첫 확진… 바이러스, 박쥐서 발원 추정

입력 2020-01-23 04:03
우한 폐렴 환자가 중국 밖에서도 속출하자 전 세계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한 여성이 22일 태국 방콕의 한 병원에서 마스크를 한 채 체온을 체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 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 폐렴)에 걸린 환자가 400명을 훌쩍 넘어서고 미국까지 확산되면서 전 세계에 방역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부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우한 폐렴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춘제(春節·설) 연휴를 맞아 인구 대이동이 시작돼 사실상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리빈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부주임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우한 폐렴 확진자가 21일 자정 기준 13개 성·시에서 440명으로 집계돼 하루 사이에 149명 늘었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9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발표 후에도 확진자는 계속 늘어났다.인민일보는 오후 7시 30분 현재 확진자가473명으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우한 폐렴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범위도 넓어지면서 2003년 37개국에서 8000여명을 감염시키고 774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 사태가 재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한 폐렴이 사스처럼 박쥐에서 발원했으며 전염성이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 가오푸 센터장은 이날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 바이러스와 매우 높은 유사성이 있으며, 두 바이러스가 큰박쥐(fruit bat)에서 발견되는 ‘HKU9-1 바이러스’를 공통 조상으로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2일 홍콩국제공항에서도 학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과 마카오에서도 확진자가 나왔고, 미국에서도 중국을 다녀온 주민이 우한 폐렴 첫 확진 판정을 받는 등 감염자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마카오 특별행정구 질병예방센터는 이날 우한에서 마카오로 여행 온 중국인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117명의 의심 환자가 발생했던 홍콩에서도 이날 첫 확진자가 나왔고 전날 대만에서도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태국에서도 환자가 추가로 발생해 확진 판정자가 4명이 됐다. 이날 발표된 확진 환자는 최근 우한을 다녀온 73세 여성으로 태국 국적자의 확진은 처음이다.

미국에서도 중국 우한으로 여행을 다녀온 30대 남성이 우한 폐렴에 감염됐다. 이 환자는 지난 15일 시애틀로 귀국했는데 시료 확인 결과 우한 폐렴 확진 판정이 내려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우한에 대한 여행 경보를 2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21일(현지시간) 인도 콜카타 네타지 수바스 찬드라 보스 국제공항에서 중국에서 입국하는 승객의 체온을 검사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에 대한 대응 조치를 최상급으로 높여 사실상 ‘우한 폐렴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중국 정부는 전날 우한 폐렴을 사스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해당하는 ‘을(乙)류’ 전염병으로 지정하고 대응책은 흑사병이나 콜레라와 같은 ‘갑(甲)류’ 전염병 수준으로 상향키로 했다. 갑류 전염병 수준 대응은 정부가 모든 단계에서 격리 치료와 보고를 요구할 수 있고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공안이 강제하거나 공공장소 검문도 가능하다. 을류 전염병 지정에 갑류 대응은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중국 정부가 채택했던 극약 처방이라고 환구망은 소개했다.

우한시 문화여유국은 우한의 모든 여행사에 22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영업을 잠정 중단하고 단체 관광을 모집하지 말라고 통지했다. 바이러스 장벽 쌓기에 나선 것이다. 뒤늦은 대처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투명하고 시의적절하게 책임 있는 태도로 관련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