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러브콜에 고민 깊은 北… ‘우한 폐렴’ 파장에 손 내밀 수도

입력 2020-01-23 04:02
지난 20일 조선중앙TV 일기예보에 처음 등장한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점 사업인 양덕온천관광지구가 지난 10일 개장하자 북한 매체들은 연일 이곳을 홍보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북한 개별관광’ 정책에 대해 북한이 1주일째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남측의 카드를 받을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 11일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발표한 담화를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 개별관광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이에 대한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개별관광 카드를 수용할지 말지를 고심하느라 침묵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2일 “북한이 마식령스키장과 양덕온천문화휴양지 등 국가 주도로 휴양시설을 잔뜩 지어놨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관광객이 필요하다”며 “중국 관광객만으로는 이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도 결국 남측 관광객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측의 개별관광이 현실화되고 규모가 확대된다면 질식 직전인 외화 수급에 숨통을 틔울 수 있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균열을 낼 수 있다.

최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2019-nCoV·우한 폐렴) 확산 사태로 인해 북한이 한국 정부가 내민 손을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광시설은 잔뜩 지어놨는데 외국인 관광객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중국인을 한동안 받을 수 없게 됐으니 한국 관광객을 받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우한 폐렴’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 통제에 나섰다. 북한 전문 여행사 영파이오니어투어스는 홈페이지에 ‘북한은 코로나바이러스 예방 조치로 22일부터 모든 외국인 관광객에게 국경을 일시 폐쇄한다’고 공지했다. 중국 베이징에 사무실을 둔 고려투어도 북한이 22일부터 관광객 입국을 금지한 사실을 북한 내 파트너들을 통해 확인했다고 홈페이지에 밝혔다. 조선국제여행사도 중국인 관광객 입국 전면 금지를 중국 여행사들에 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개별관광 추진 의사를 거듭 밝히면서 북한의 태도를 신중히 살피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1주일째 북한의 반응이 없는 것을 긍정적 시그널로 해석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개별관광 문제는 민간교류 확대 차원에서 계속 검토해 나가고 있다”며 “관광객의 신변 안전 보장도 다각적인 방안을 통해 강화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대남·대미 압박용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개별관광 제안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 정부가 연초부터 드라이브를 거는 개별관광 등 남북 협력사업을 놓고 한·미 간 이견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이를 빨리 걷어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는 20일(현지시간) “남북 협력은 반드시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개별관광 문제를 놓고 한·미가 파열음을 내고 있는 데다 개별관광이 현실화되면 외화 획득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 거절할 이유가 없다. 남북 관계에 올인하고 있는 문재인정부를 압박하는 데도 이만한 카드가 없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