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신명기 28장은 성도들에게 축복의 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는 6절 말씀은 크리스천의 집집마다 많이 걸려 있는 성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신명기 28장은 복과 저주를 동시에 선포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복에 관한 약속은 14절에서 끝나지만, 저주에 관한 경고는 15절부터 마지막 구절인 68절까지 이른다는 사실이다.
왜 복의 약속보다 저주의 경고가 많을까. 우리는 이 경고의 말씀들 속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표정을 읽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간절함과 안타까움이다. 우리를 복의 길로 이끌고야 마시겠다는 하나님의 심정이 이 수많은 경고 속에서 울려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약속과 저주의 경고 모두 언약이라는 형태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 사랑의 마음을 신자들이 읽어내지 못하면, 이 복과 저주의 말씀들을 조건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내가 신앙생활 잘하면 복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거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나님을 마치 채점관처럼 오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시는 것은 우리를 엄정하게 평가해 상응하는 대가를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약 그렇게 평가받는다면 이 세상에 복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가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을 주시기 위해 언약 안으로 부르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들도 우리가 훌륭해서 주시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오직 은혜로 주어질 따름이다. 이는 우리가 어떠한 공로도 내세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 같은 죄인이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직 감격하고 찬송할 뿐이다. 찬송가 310장의 가사처럼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하는 경탄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감격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감격은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 그런데 왜 저에게 이 복을 주셨나요. 왜 저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 믿게 하셨나요.” 우리 신자들은 이것을 정말 궁금하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 같은 자를 불러 복을 주시는가. 우리는 그 답을 아브라함에게 복 주신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발견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부르신 것은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먼저 복을 받은 자들을 통로로 삼아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시기 위해서다. ‘하나님께 복 받은 자’라는 사실은 감격과 감사를 넘어 사명으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 곁에 있는 이웃들에게 그 복을 나누고 흘려보내는 것이 먼저 복 받은 자의 사명이다.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예수 안에서 이미 큰 복을 받은 분들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 대신 “새해 복 많이 나누세요”라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가 받은 복은 누릴 뿐만 아니라 세상과 나누라고 주신 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깨달아, 이번 명절을 넉넉한 마음과 나눔으로 보낼 수 있길 소원한다.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