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 후 첫 청와대 인사를 발표했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서울시 출신이 다수 기용됐다는 점이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하승창 전 사회혁신수석, 서울연구원장을 역임한 김수현 전 정책실장,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을 지낸 조현옥 전 인사수석 등이 당시 이름을 올렸다.
물론 이들이 서울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임 전 실장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국회의원 재선과 당 사무총장을 지냈고 김수현 전 실장과 조 전 수석도 참여정부 청와대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다시 쓰임을 받은 데는 서울시에서의 경험이 큰 힘이 됐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4월 대선 후보 시절 “서울시의 검증된 정책들, 또 검증된 인재들, 제가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 다음 정부는 박원순 시장과 함께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서울시의 도시재생, 청년주택, 청년수당 등을 정부 정책으로 채택했다. 그만큼 서울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움츠렸던 진보진영의 정책 테스트베드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서울시 출신 고위 인사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잇따라 출사표를 던졌다. 최근 강태웅 전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용산 출마를 위해, 김원이 전 정무부시장은 고향 목포에서 출마하기 위해 물러났다. 앞서 윤준병 전 행정1부시장(정읍·고창), 하승창(서울 중구·성동을) 진성준 전 정무부시장(서울 강서을), 천준호(서울 강북갑) 허영(춘천) 전 비서실장, 최종윤(경기 하남) 박양숙 전 정무수석(천안병), 박상혁(경기 김포을) 전 정무보좌관은 일찌감치 지역구로 내려가 표밭 갈이를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울시 고위 인사들의 총선 출마로 행정 공백이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행정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고위직 몇 명 빠진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사에 숨통이 트여 조직에 활력을 줄 수 있다. 사퇴한 이들은 임기가 없는 임명직이고, 헌법상 피선거권이 있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자신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선출직으로 국민에 봉사하기 위해 출마할 수 있다. 행정분야에서 쌓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국회로 진출해 법과 제도를 만들고 실사구시 정책을 펴는 것은 진영 논리에 빠져 있는 우리 정치권에 필요한 일이다. 다만 스스로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단순히 ‘박원순 시장의 측근이었다’ ‘서울시에서 ○○를 맡았었다’는 타이틀만으로 표를 달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박원순 시장도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사자는 새끼를 낳으면 낭떠러지 밑에 떨어뜨려 알아서 기어 올라오게 한다”며 “서울시 부시장, 정무수석 지낸 사람은 마땅히 알아서 할 일이지 제가 뭐라고 하겠나”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서울시 출신 인사들의 총선 성적표는 박 시장의 2022년 대권 가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당내 기반이 약한 박 시장으로서는 같이 일한 사람들이 많이 당선돼야 ‘여의도 정치’와의 연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고 대선 경선에서도 세 규합에 유리하다. 총선에 나서는 ‘박원순 사단’의 첫 관문은 당내 경선이다.
서울시 출신 인사들이 대부분 전략공천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주자들과 공정한 경쟁을 통해 후보로 선출돼야 본선에서 뛸 수 있다. 돌아보면 2016년 총선 당시 서울시 출신 인사들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임종석 전 정무부시장은 경선에서 탈락했고 천준호, 허영 전 비서실장은 본선에서 패했다. 이후 2017년 당내 지지세력 없이 거의 단기필마로 대선 경선에 나섰던 박 시장은 친문 벽에 막혀 중도에 접어야 했다. 이번 총선에서 박원순 사단이 약진한다면 답보상태에 있는 박 시장의 지지율도 되살아날 수 있고 당내 기반도 탄탄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리멸렬해진다면 대권 행보에 먹구름이 낄 수밖에 없다. 박 시장에게 이번 총선은 대선의 전초전인 셈이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