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김경수, 킹크랩 시연 참석했다” 결론… 2심 선고는 연기

입력 2020-01-22 04:02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심리 중인 항소심 재판부가 “김경수(사진) 경남도지사가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가 ‘잠정적’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이는 “킹크랩을 본 적 없고, 시연회 자체도 모른다”던 김 지사의 입장과 정반대로 배치되는 판단이다. 사실상 방어 논리가 깨져버린 김 지사는 향후 재판에 대해 “더 어렵고 힘든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차문호)는 21일 애초 이날로 예정된 선고기일을 연기하고 변론을 재개한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현 상태에서 최종적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며 운을 띄웠다. 이어 “잠정적이긴 하지만 피고인의 주장과 달리 김동원씨(드루킹)로부터 킹크랩 시연을 보았다는 사실은 상당 부분 증명됐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2016년 11월 9일 김 지사가 김씨 사무실에 방문해 킹크랩 프로토타입(초기 버전)의 시연회에 참석했다는 허익범 특별검사팀 측 주장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특검과 김 지사 측은 그간 킹크랩 시연회 참석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다퉈왔다. 재판부가 “그간 쌍방이 주장하고 심리한 내용은 김씨가 피고인에게 ‘온라인 정보보고’를 하고 ‘킹크랩’을 시연했는지 여부에 집중됐다”고 밝힐 정도였다. 김 지사는 줄곧 킹크랩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태도를 취해 왔다. 시연회 참석 후 킹크랩의 사용을 허락하거나 묵인했다면 김씨와 댓글조작 범행을 공모한 혐의를 피하기 어려웠던 김 지사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증인신문에서 “김 지사가 킹크랩이 구동되는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봤다” “(김 지사가) 고개를 끄덕여 (사용에) 동의했다”고 진술했다. 김 지사 측은 “킹크랩 시연을 본 적이 결코 없다”고 맞섰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날 “특검이 객관적 자료를 통해 (시연회 참석 사실을) 상당 부분 증명했다”며 “김 지사가 믿기 어렵다는 김씨 진술을 제외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재판부는 “시연회에 김 지사가 참여했는지 여부는 더 이상 주된 심리대상이 아니다”고 못박기까지 했다. 그간 재판에서 주된 쟁점이 된 부분의 판단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말이었다. 다만 재판부는 “김 지사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를 판단하고자 한다”며 추가 심리를 진행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 지사가 김씨 일당의 댓글 순위 조작 범행에 적극 가담한 공범인지, 만일 공범이라면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살피겠다는 계획이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직접 범행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공범자의 범행을 강화하도록 돕는 것만으로도 공동정범이 성립될 수 있다. 반대로 타인의 범행을 인식하더라도 이를 막지 않고 단순 용인하는 것만으로는 죄가 안 된다. 재판부는 김 지사 측과 특검 측에 추가 심리가 필요한 쟁점을 정리해 전달했고, 다음 달 21일까지 변론 요지서를 제출토록 요구했다.

재판부는 또 김씨가 언론 기사 목록과 함께 “처리했습니다” 등의 메시지를 보낸 것을 김 지사가 문제 삼지 않은 이유를 해명토록 했다. 김 지사가 19대 대선과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민주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향후 심리할 대상으로 제시했다.

김 지사는 페이스북에 “어쩌면 왔던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길이 될 수도 있다”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진실의 힘을 믿고, 당당하고 꿋꿋하게 이겨나가겠다”고 적었다. 다음 공판은 3월 10일에 열린다. 김 지사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4·15 총선 후에 내려질 가능성이 커졌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