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결국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결정했다. 다만 독자적으로 작전을 펴는 방식이다. 정부는 21일 청해부대 파견 지역을 호르무즈해협이 있는 아라비아·오만만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한국 국민과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해온 부대다.
독자 파병은 미국은 물론 이란과의 관계까지 고려한 절충안이다. 미국은 지난해 6월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 피격이 잇따르자 이 해협을 통제하는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면서 한국 등 동맹국들에 파병을 요청했다. 정부는 이란을 의식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독자 파병 형식을 택해 미국의 파병 요구에 응한 셈이다. 정부는 이를 지렛대로 삼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나 북·미 비핵화 협상 등에서 미국 측에 보다 진전된 입장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이날 청해부대 파견 지역의 한시적 확대 결정을 발표하면서 “청해부대는 우리 군 지휘 아래 국민과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며,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파견 명분은 국민 안전과 원유 수급이다. 최근 정세가 악화된 중동 지역에는 약 2만5000명의 우리 국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국내에 수입되는 원유의 70%가 호르무즈해협 일대를 거쳐 들어온다. 정부 당국자는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선박이 연 900여회 통항하고 있다”며 “유사시 군의 신속한 대응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아덴만 일대의 해적 위협이 감소 추세인 것도 파견 지역이 확대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파견 지역 확대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요구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지난해 미국이 동맹국들에 IMSC 참여를 요청한 이후 정부도 한때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이달 초 미국의 ‘가셈 솔레이마니(이란군 실세) 제거 작전’으로 미·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정부의 입장이 약간 달라졌다.
정부가 IMSC 참여 대신 독자 파병 형식을 취한 것은 이란을 달래기 위해서다. 우리 국민과 선박의 안전 확보를 위해 군을 파견하는 것이지 미국과 함께 중동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의도는 없다는 것이다. 앞서 일본도 IMSC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상자위대 호위함 1척과 P-3C 초계기를 파견했다.
정부는 지난주말 외교 경로를 통해 이란 측에 이번 결정을 통보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은 해당 지역에 외국 군대나 선박이 오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며 “그러면서도 이란 측은 한·이란 관계는 잘 관리해 나가자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20일 주간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사전에 통보했으나 ‘미국의 모험주의에 동조하는 것은 오랜 양국 관계에 맞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다’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은 한국의 결정을 환영하고 기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정보 공유 등을 위해 청해부대 연락장교 2명을 바레인에 있는 IMSC 본부에 파견키로 했다. 독자 작전을 수행하더라도 필요한 경우 IMSC와 협력할 예정이다. IMSC에는 미국과 영국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알바니아 등 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문동성 이상헌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