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리더 선택한 한국노총… ‘강력한 대정부 투쟁’ 선언

입력 2020-01-21 18:44 수정 2020-01-21 21:14
제27대 한국노총 위원장과 사무총장으로 각각 당선된 김동명(오른쪽) 화학노련 위원장과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이 21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두 팔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한국노총 신임 지도부는 한층 강경한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새로운 한국노총 수장으로서 더 이상 정부가 노동을 들러리로 세우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당선인이 21일 서울 송파구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당선 직후 이렇게 외쳤다. 곧이어 체육관은 조합원 선거인단 3000여명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김 위원장 당선인은 중구에서 19일째 이어지는 기업은행 노조의 ‘낙하산 인사 반대’ 출근저지 투쟁현장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한국노총 27대 위원장·사무총장 선거 현장의 분위기는 후보자들의 잇따른 ‘한국노총 위기론’과 ‘문재인정부 규탄’ 발언에 격앙돼 있었다. 당선인과 후보자들 모두 최근 민주노총에 제1노총 지위를 빼앗겨 허탈해하는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한층 강한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한국노총은 ‘2020년 한국노총 정기선거인대회’에서 선거인단 총 3128명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 1580명(50.5%)의 지지를 받아 김동명 화학노련 위원장과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이 각각 제27대 위원장과 사무총장으로 당선됐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 당선인은 IMF 구조조정 반대투쟁, 2대 지침(취업규칙 변경·쉬운 해고 지침) 폐기 투쟁 등을 전개했던 강성 인사로 분류된다. 이 사무총장 당선인은 전국우정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지난해 우정노조 역사상 최초로 총파업 투쟁을 선언했던 인물이다. 한국노총 선거인단도 결국 투쟁노선으로의 선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쪽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국노총 조합원 선거인단이 체육관에 마련된 투표장에서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투표에 앞서 정견 발표에 나선 후보자들은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 당선인은 “한국노총이 제1노총의 지위를 잃은 건 신설 노조들이 한국노총으로 안 오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노총이 타협에만 매달려 현장 조합원들을 무시하는 의사결정을 한 게 문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통받는 40여개 노조와 공무직 노동자와 투쟁을 함께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직무 성과급제 개편에 대해선 ‘노동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 사무총장 당선인도 “지난해 우정노조가 승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 부처 갈등 해결을 위해 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민주노총 조합원이 한국노총 조합원보다 더 많아졌다고 발표했는데, 이 수치는 우리가 통산한 수치와 다르다”며 제1노총 변동 여부에 의구심도 제기했다.

김만재(금속노련 위원장) 위원장 후보자는 스스로를 ‘투쟁의 아이콘’이라 칭했다. 김 후보자는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동력을 상실했고 최저임금 1만원 공약도 사실상 철회했다”고 비판했다. 후보자들이 강경 투쟁의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지지자들은 후보자 이름을 크게 외치며 호응했다.

김 위원장 당선인은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각을 세우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상시적인 대화 채널을 통해 정책 파트너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대화가 결렬됐을 땐 강력하게 투쟁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현재 여당(더불어민주당)을 만든 주체로서 한국노총의 당내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겠다”고 말했다. 당선인 임기는 3년이며 오는 28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새 지도부가 이전 지도부와의 차별화를 위해 단기적으론 강경 투쟁 노선을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조직 안팎에서 투쟁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새로운 정책 개발 등에 힘써야 할 것”이라며 “총선 결과에 따라 협력이나 투쟁이냐 태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