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못 바꾸게”… 인사 앞둔 檢 ‘불가역적 기록 보존’ 올인

입력 2020-01-22 04:02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검찰 직제개편안 수정보고서를 들고 있다. 국무회의에선 검찰의 직접수사 부서 13곳을 형사부와 공판부로 전환하는 내용의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의결됐다. 뉴시스

“최선을 다해서 진도를 나가는 듯하다. 인사를 예상하고 나갈 데까지 나가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의 수사 모습을 바라보는 한 검찰 관계자는 21일 이렇게 촌평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조직 재편 방안에 따라 고검검사급(차장검사·부장검사) 이하 검사들의 인사가 23일 발표되는 상황에서 이른바 ‘주목받는 수사’를 하던 수사팀들은 그간 쌓아온 기록을 ‘불가역적’인 상태로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다.

복수의 검찰 구성원들은 “후임자가 와도 뭔가를 바꿀 수가 없도록 수사기록 취합을 탄탄하게 해놓는 단계”라고 말했다. 검찰 인사철에는 수사에 의지를 가져온 검사들이 기록을 명백하게 정리해놓고 가는 관행이 있다. 특히 이번 인사는 청와대를 겨냥한 주요 수사가 한창 이뤄지는 중에 단행되기 때문에, 전임 수사팀의 판단을 되돌리기 어렵도록 증거관계들을 최대한 모아놓겠다는 취지다. 한 부장급 검사는 “방향성이 정해진 수사라기보다, 기존 수사팀이 해온 수사에서 혐의를 입증할 증거들은 ‘손 놓지 않고’ 축적해놓고 가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물 등 일체 수사기록들은 전자화된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인 킥스(KICS)에 보존된다. 과거엔 기록을 따로 보존하는 노력을 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킥스가 도입되기 전 인사철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수사기록을 한 부 복사해서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인사철이 되면 사건 관계인들이 검찰청에 문의하는 일도 잦다. 수도권 일선 청 형사부에 근무하는 한 평검사는 “최근 검사장급 인사가 이뤄진 이후에 고소인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인사철이 되면 사건이 어떻게 되는지 문의하는 이들이 늘 많다”고 말했다. 검찰로서는 정기인사일 뿐이지만, 고소인들은 “무슨 일이 터진 거냐”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이번 인사는 직제개편이 동반된다. 따라서 사건 관계인들의 민원도 크게 늘었다.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는 20일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해 직제개편안에 대해 항의했다. 이들은 2017년 포항지진 사태가 지열발전 탓이라는 정부조사연구단의 연구조사 발표 이후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서울중앙지검 과학기술범죄수사부에 고소했었다.

검찰 내 분위기는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 참모진의 교체,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통과, 양석조 대검 반부패수사부 선임연구관(차장검사)의 항명성 발언 사태로 여느 때보다 뒤숭숭하다. 지난 14일 사직한 김웅 부장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올린 ‘사직설명서’에는 유례없이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다. 검사들은 지난 20일 법무부가 발표한 인사원칙을 받아 읽었다. “형사·공판부 우대 방안이 쓰여 있지만, 예전에도 있던 말이긴 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검사 인사 후 ‘줄사표’를 예상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 폭은 과거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변호사업계가 포화 상태라는 이유에서다. 최근 3년여간 검사장 출신 등 ‘전관 변호사’가 급증했고, 현재는 대형 로펌에 가더라도 사건 수임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앞으로 검찰 수사 총량도 줄어들면, 사건 수임이 더욱 힘들어지겠다는 우려도 송무시장에서 감지된다”고 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