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사자후] ‘관람의 시대’ 게이머는 누구인가

입력 2020-01-23 17:17

“보는 유저와 하는 유저가 나뉘어져 있어요. e스포츠 보는 유저 중에 게임을 안 하는 유저들이 꽤 많아요.” “롤(LoL·리그 오브 레전드)은 모르는데 LCK(LoL 챔피언스 코리아)를 보는 경우는 되게 많아요.” 최근 게임 전문기자나 e스포츠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들었던 발언들이다. 게임이 야구의 진화과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야구를 즐겨보는 사람들 가운데 정작 실제로 야구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플레이가 아니라 관람을 통해 야구를 배우게 되는 사람도 많다.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게임 종족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대신 남들의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광안리에 십만명이 모여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때가 20년 전이지만 그 때와 달라진 점은 ‘순수 관람객’의 비중이 커졌다는 것이다. 보고 배우려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즐긴다. 선수들의 수준 높은 플레이도 보지만 먹방 스타의 플레이도 본다. 대리만족으로 퉁칠 일만은 아니다. 새로운 종류의 ‘유희’이다. 게임의 확장인 동시에 질적 변형이다.

그런데 e스포츠와 야구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지식재산권(IP)이다. 게임 종목들은 사기업의 소유이고, 따라서 게임의 규칙은 기업의 결정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다. e스포츠의 주도권은 점점 게임의 제작·서비스사로 넘어가고 있다. 따라서 e스포츠라는 새로운 방식의 유희가 자칫하면 전적으로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좌우될 수도 있다. 야구와는 달리 특정 e스포츠 종목이 이윤 창출을 위한 하나의 상품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를 견제하고 ‘관람의 즐거움’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은 누구에게 있는가? 소비자다. 즉 게임 ‘관람객’들에게 있다.

이제 ‘게이머’는 PC방에 눌러앉아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e스포츠 경기장을 방문하고 게임 스트리밍을 즐겨보는 관람객도 포함하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도처에 있다. 카페에도 지하철에도 있다. 게임사가 게임을 기획할 때, 정부가 게임 관련 정책을 입안할 때, 학교에서 게임산업과 문화를 가르칠 때, ‘게이머’의 범주는 이들 모두를 포괄해야 한다. e스포츠를 그저 새로운 스포츠 종목의 등장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지속된다면 산업적 고립과 정책 실패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게임문화의 지형은 기술이나 법률보다 빠르게 변화한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