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과 검찰 수사, 부동산 투기 등 논란에 휩싸였던 인사들이 4·15 총선 출마를 잇달아 선언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들의 ‘명예회복성 출마 선언’을 놓고 국민의 대표를 뽑는 총선 자체가 희화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배신의 정치를 끝장내겠다”며 대구 동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었던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 지역구에 출마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 첫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됐던 윤 전 대변인은 2013년 박 전 대통령 방미 일정을 수행하던 중 여성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물러났다. 윤 전 대변인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만약 내가 성추행을 했다면 워싱턴 검찰과 경찰이 쇠고랑을 채웠을 것”이라며 “(나의 출마는) 감옥에 계신 박 전 대통령을 대신해 정당한 탄핵이었는지에 대한 심판을 받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투’ 논란에 휘말렸던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의원은 금태섭 민주당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서갑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정부·여당의 검찰 개혁을 비판했던 금 의원을 저격하기 위한 출마 선언이다. 정 전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 의원의 정체성을 지키는 사람과 당론이 있든 말든 소신이라고 하며 자기 생각대로 가는 사람 중 당원들은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물으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은 2018년 6·13 지방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과거 성추행 의혹이 불거져 정계 은퇴를 선언했었다. 지난해 10월 이와 관련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민주당에 복당했으며,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전북 군산 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대변인은 서울 흑석동 상가주택을 매각한 뒤 차익을 기부했다는 소명자료를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에 제출했으나 이날 검증위는 김 전 대변인의 총선 예비후보 적격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관련 수사를 받은 인사들도 출마를 준비 중이다. 송병기 전 울산 부시장은 울산 남갑,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은 대전 중구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에선 곤란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청와대와 여당이 사실상 검찰과 전면전을 치르는 와중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지 않겠느냐는 우려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민 눈높이를 고려해 국회의원 출마 자격 자체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회의원은 헌법에 따라 청렴의 의무를 부여받으며 국익을 우선시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과거 행적으로 이미 이런 기준을 부여받을 자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른바 ‘국민 정서법’을 이유로 출마를 막을 경우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25세 이상 국민은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피선거권이 정지되거나 상실된 경우가 아니라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자격 자체를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누군가의 이름을 팔거나 지역주의에 기댄 출마자들을 가려내거나 출마 자체가 부적절한지 여부를 심판하는 것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라며 “국민 의식이 이제는 충분히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경택 신재희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