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직접 시비를 걸거나 주재국 정치에 간섭하는 모양새여서 외교 사절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많다. 재임 시절 한국에 대해 큰 애정을 보여줬던 마크 리퍼트, 캐슬린 스티븐스 전 대사와 대비되기도 한다.
실제 해리스 대사의 ‘말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가 지난 16일 외신 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두고 청와대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정면 비판했을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부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북한 개별관광 허용 등 ‘남북 협력 사업’에 대해 해리스 대사가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여당에서도 “대사가 조선총독이냐” “내정간섭”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해 11월 해리스 대사는 이혜훈 당시 국회 정보위원장 등을 관저로 불러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이때도 여권에서 “그렇게 무례한 대사는 처음이다” “아무리 군인 출신이어도 외교관으로서 예의는 갖춰야 한다” 등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외교가에서도 해리스 대사의 언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해리스 대사가 ‘대북 제재 유발을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운영하라’는 말 대신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을 위해 한·미 간 긴밀한 조율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외교적으로 바른 언행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해리스 대사의 직설 화법은 그가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 해군 4성 장군 출신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본론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외교적 화법’을 익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대사관저에 대한 한국 시위대의 두 번째 무단침입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해리스 대사는 경찰에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트위터에 ‘서울 중심부에서 13개월 만에 두 번째 일어난 사건’이라고 적어 불편함을 내비쳤다. 2015년 서울의 한 행사장에서 흉기 테러를 당해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던 리퍼트 전 대사와 비교되는 장면이다. 리퍼트 전 대사는 당시 병원에서 ‘한국인들의 지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같이 갑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리퍼트 전 대사는 재임 기간 한·미동맹 강화에 힘썼다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서 낳은 두 아이에게 세준, 세희라는 한국식 중간 이름을 지어줬고, 대사 퇴임 후에도 한국에 대한 애정을 자주 표시했다.
2008~2011년 재임했던,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스티븐스 전 대사도 한국인과의 소통에 힘써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해리스 대사와 당청 사이의 충돌을 두고 한·미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해리스 대사를 크게 신뢰하고 있다. 해리스 대사는 국무장관과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한다”고 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해리스 대사의 직설적 화법이 외교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의중을 가장 솔직히 전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며 “대사의 발언이 논란이 되는 것은 그만큼 한·미 간 메시지 조율이 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