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 사령탑인 리용호 외무상이 해임되고 후임으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임명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교착에 따른 문책성 조치이자, 대미 강경 기조를 예고한 인사로 풀이된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당분간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19일 “리 위원장이 신임 외무상에 오른 것 같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은 지난주 이 같은 사실을 평양 주재 외국 대사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 NK뉴스도 지난 18일(현지시간) 리 위원장이 외무상에 기용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NK뉴스는 오는 23일 공관장 행사를 전후해 신임 외무상이 공개될 것으로 봤다. 통일부는 “외무상 교체 관련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며 “리 위원장의 직위 변동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 신임 외무상은 군 출신으로 대남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2006년 10월 남북 군사실무회담을 시작으로, 2018년 1월 남북 고위급회담 당시 북측 대표로 나섰다. 반면 국제외교를 경험한 전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격을 넘어 충격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인사로 북·미 비핵화 협상에 관한 외무성의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연말 시한’까지 제시하며 과감한 외교를 구사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얻은 것이 없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외무성에 물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외무성이 북·미 비핵화 협상 전면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미 강경 노선을 걷겠다는 의지도 대내외에 재차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정면 돌파로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극복하겠다고 천명했다. 군 출신 강경파 인사를 대미 외교의 최전선을 책임지는 외무상에 앉히면서 공격적인 외교를 예고한 셈이다.
실제 리 신임 외무상은 저돌적으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8년 9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찾은 우리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며 핀잔을 줘 구설수에 올랐다. 2011년 2월 남북 군사실무회담 때 천안함 폭침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와 무관하다”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을 만큼 다혈질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입장을 반영한 인사로 해석할 수 있다”며 “당 전원회의에서 밝힌 강경 노선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대미 외교의 핵심 역할을 담당해온 리수용 당 국제부장도 해임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통신은 항일 빨치산 1세대 황순희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는데, 리 부장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올해 80세인 점 등을 감안해 세대교체 차원에서 김형준 전 주러시아 대사한테 자리를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와 김성 유엔대사가 지난 18일 평양으로 귀국했고 앙골라,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들도 베이징 공항에서 외신에 목격됐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