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구도 깨는 확고한 정치세력 구축
이념적 진영 논리 압도할 실용의 비전
새 정당 성패는 이 두 가지에 달렸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총선을 석 달 앞두고 정치 무대에 복귀했다. 독일과 미국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다 귀국한 그는 20일 국립현충원과 5·18 묘역을 참배하며 활동을 재개한다. 1년4개월 전 출국 당시의 안철수는 실패한 정치인이었다. 두 차례 대선에 도전했으나 선택 받지 못했고, 두 차례 정치적 연대를 시도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입당과 바른미래당 창당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서울시장 선거마저 패해 비호감 이미지를 덧입은 채 독일로 갔다. 2011년 정치에 발을 들일 때 60%에 육박했던 지지 여론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고 있었다. 진보와 보수 정권을 차례로 겪으며 우리 사회의 고질적 이분법 구조와 그것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에 염증을 느낀 국민은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냈다. 이후 7년간 정치인 안철수는 그런 욕구를 채워주는 데 실패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듯 진보 정당에 뛰어들어서는 계파의 벽을 넘지 못했고, 중도 정당의 독자 노선은 좌우 진영의 벽을 넘지 못했으며, 보수 진영과 손잡은 정당은 이질성을 넘어서지 못해 쪼개졌다. 원인은 명확하다. 그가 보여준 정치는 진영의 기득권을 허물 만큼 새롭거나 매력적이지 않았다. 새 정치란 구호 역시 명확한 지향점을 제시하지 못한 탓에 시간이 갈수록 퇴색했다.
정치인 안철수는 그렇게 떠났지만 안철수 현상을 일으켰던 유권자의 욕구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거세질 여건이 조성됐다. 지난해 조국 사태로 진영 대결의 극단적 소모전이 일상화됐다. 진실을 왜곡하는 진영 논리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났다. 진영 싸움판으로 전락한 20대 국회는 최악의 입법 성적을 냈다. 진영의 요구에 부합하려는 정부의 각종 정책은 부작용과 후유증을 낳고 있다. 대화와 협치와 통합은 실종되고 투쟁과 대립과 분열로 치닫는 한국 사회는 세계적인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에 가장 절실한 유연성을 잃었다. 이런 세상을 만든 낡은 진영 정치에 맞서 보수-진보의 이분법 구도를 깨뜨릴 비전과 역량을 보인다면 누구라도 제2의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년4개월 공백기를 거친 안 전 대표가 다시 그 자리에 서기 위한 조건도 다르지 않다. 지금은 정치공학적 계산보다 다시 정치를 하는 이유가 더 중요하다. 그는 귀국 직후 “중도·실용의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경직된 진영 구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치세력의 구축, 이념적 진영 대결을 압도할 만큼 철저하게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비전. 이 두 가지 지향점을 끝까지 지키고 실천해내느냐에 그의 성패가 달려 있다.
[사설] 안철수 재기의 조건
입력 2020-01-20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