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등 제3국 통해 이산가족 고향방문 추진

입력 2020-01-17 04:07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대북 제재 대상에 올린 중국 베이징의 베이징숙박소 1층 상점이 16일 정상 영업을 하고 있다. 주중 북한대사관 인근에 있는 베이징숙박소는 북한의 불법적 해외 노동자 송출과 관련됐다는 이유로 미국의 단독 제재 대상에 올랐다. 연합뉴스

꽉 막힌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촉매로 북한 개별관광 카드를 꺼내든 정부가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주의적 교류인 점을 내세워 개별관광에 관한 국내외 지지를 확보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북한이 호응만 한다면 중국 등 제3국을 통한 고향방문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이 같은 구상에 대해 “미국과 한국이 서로 긴밀히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독자적인 남북 협력 추진 계획을 견제한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16일 기자들과 만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정부의 최우선적인 과제”라며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해소할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개별관광 방안 중 하나로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산가족이 중국 등 제3국 여행사를 통해 북한 비자만 발급받으면 방북 승인을 해주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신변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사람에 한해 방북을 허가했다. 비자 발급을 통한 방북이 성사될 경우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은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제3국에서의 비자 발급을 통한 우리 국민의 금강산 관광도 검토하고 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금강산 관광이나 대북 개별방문의 경우 유엔 대북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 언제든 이행할 수 있으며, 이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개별관광이 북한 입장에서 크게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대북 제재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를 끌어내려 하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재 완화에 비해 사소한 개별관광 제안을 수용하면서 한·미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또 다른 난관인 미국 설득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과 협의하기 위해 방미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개별관광 추진과 관련해 “미국과 한 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며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지금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미국이 기존의 제재 체제를 존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이라며 “(미국과) 협의를 하는 것은 기존에 국제사회가 합의한 제재의 틀을 존중하는 내에서 우리가 여지를 찾아보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리스 대사는 외신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움직임에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그는 “개별관광 재개와 같은 한국의 제안에 관해 미국의 공식 입장은 없다”면서도 “제재를 유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국은 북한과 어떤 계획을 실행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운영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NK뉴스에 따르면 해리스 대사는 북한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의 짐에 들어가는 물건 일부가 제재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관광객들은 어떻게 북한에 도착하나. 중국을 거쳐 갈 것인가. 비무장지대(DMZ)를 지날 것인가. DMZ는 유엔군사령부와 관련이 있다. 어떻게 돌아올 것이냐”며 방북 루트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손재호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