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새해부터 막말로 구설에 오르면서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21대 총선이 9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사소한 말실수 하나가 선거 판도를 바꾸는 기폭제가 될 수 있어서다.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민의식이 성숙해졌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기 때문에 정치인의 발언을 평가하는 잣대가 어느 때보다 엄격한 선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는 자신의 전날 발언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 대표는 “어느 쪽을 낮게 보고 한 말은 아니다”라며 “그런 분석이 있다는 이야기를 제가 전해 들어서 한 말인데,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조금 상처를 줬다고 하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드리겠다”고 말했다. 전날 사과문을 낸 데 이어 거듭 유감 표명을 한 것이다.
한국당도 전날 이 대표를 비판하는 논평에서 또 다른 장애인 비하 표현을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자 3시간 만에 해당 표현을 삭제했다.
두 당이 신속 대응에 나선 것은 막말 논란이 총선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양당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적은 격전지와 여론에 민감한 수도권 지역구에서는 총선 직전 빚어진 막말 논란으로 승패가 뒤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막말로 비하한 계층이나 집단, 지역이 뚜렷하고 구체적일수록 선거에 미치는 파급력이 컸다.
민주당은 과거 두 차례 선거에서 노인 폄하 발언 때문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2012년 19대 총선 직전에는 ‘김용민 막말 파동’이 불거졌다.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후보였던 김용민씨가 인터넷 라디오방송에서 “노인네들이 (시청에 시위하러) 오지 못하도록 시청역 엘리베이터를 모두 없애자”고 말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거판이 요동쳤다. 김씨는 이 발언 전에도 여성 및 개신교 비하 발언으로 크게 논란이 된 상태였다. 민주당은 김씨의 공천을 취소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수도권 박빙 선거구의 상당수를 여당(새누리당)에 내주며 결국 선거에서 패배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치러졌던 17대 총선 때도 노인 폄하 발언이 선거 판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탄핵 비판 여론에 힘입어 집권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이 개헌선인 200석까지 확보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선거 막판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라”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야당인 한나라당(현 한국당)이 반사이익을 봤다.
2018년 지방선거를 뒤흔든 막말은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이었다. 사전투표일 전날 정태옥 한국당 의원이 방송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이 발언은 지역 비하는 물론 한부모가정까지 깎아내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선거 민심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정 의원은 한국당을 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은 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높아진 시민의식을 쫓아가지 못하면 언제든 막말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사회가 서구화가 많이 됐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이전보다 예민해진 것이 사실”이라며 “정치인들도 그런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심우삼 이가현 박재현 김용현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