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투스(무선) 이어폰이 더 편리하게, 더 똑똑하게 진화 중이다.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말소리 등 주변의 소음을 줄이거나 없애주는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갖춘 무선 이어폰이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노이즈캔슬링은 외부의 음파를 이어폰 내외부의 센서가 감지하고, 내부 센서가 반대 음파를 만들어 같이 재생시킴으로써 서로를 상쇄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 기술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노이즈캔슬링을 적용한 헤드폰 제품은 수년 전부터 다양하게 출시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주변 소음을 차단하려면 귀를 완전히 덮는 헤드폰이 유리했다. 하지만 최근 귀에 쏙 들어가는 소형 무선 이어폰이 인기를 끌면서 업계는 이어폰에도 노이즈캔슬링을 적용한 제품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애플이 지난해 11월 출시해 인기리에 판매된 ‘에어팟 프로’의 인기 비결도 ‘액티브 노이즈캔슬링’ 기능에 있다. 에어팟 프로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애플은 지난해 글로벌 무선 이어폰 시장에서 54.4%를 차지했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게 만들어 편리함도 살렸다. 이어폰을 착용하다가 주변 소리를 듣고 싶다면 굳이 귀에서 빼지 않아도 기기의 포스센서를 길게 눌러 ‘주변음 허용’ 모드로 전환할 수 있다. 이 모드에선 외부 소리가 그대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주변 사람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스마트폰의 제어센터를 통해서도 노이즈캔슬링을 껐다 켤 수 있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주력상품으로 내놓던 소니도 무선 이어폰에 이 기능을 확장해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다. 소니의 ‘WF-1000XM3’는 내·외부에 2개의 노이즈캔슬링 센서가 탑재됐다. 스마트폰으로 ‘소니 헤드폰 커넥트’ 앱을 통해 스마트 리스닝(Smart Listening)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앱으로 사용자가 실내에 앉아 있거나 바깥을 걷고 있을 때 행동을 인식해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조절한다. 사용자가 한곳에 머물고 있다면 완전한 노이즈캔슬링을, 걷고 있다면 보행 중 안전을 위해 소음 제거 기능을 완화하는 등 자동으로 주변소리 제어가 가능하다.
소니 측은 “이 제품은 HD 노이즈캔슬링 프로세서 QN1e가 결합해 한층 강력한 노이즈 캔슬링 성능을 구현하며 저전력 설계로 배터리효율이 향상됐다”며 “제품 완충 시 노이즈캔슬링 모드에서 최대 6시간 연속 스트리밍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업체 중에는 삼성전자의 블루투스 이어폰인 ‘JBL 언더아머 플래시(UA Flash)’가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하만 제품 중에도 올 상반기 내 노이즈캔슬링을 적용한 무선 이어폰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다음 달 출시할 것으로 알려진 ‘갤럭시 버즈 플러스(가칭)’에는 노이즈캔슬링이 탑재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초 에어팟 프로와 같은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기대했던 소비자들 사이에선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앞으로 노이즈캔슬링은 소비자들에게 더욱 중요한 선택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출퇴근 시간 들리는 각종 소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소음 없이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 노이즈캔슬링 제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일부 수험생은 집에서 공부할 때 노이즈캔슬링 제품을 활용하기도 한다. 거실의 TV 소리나 가족들의 대화 소리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다. 치과에서는 기계 굉음에 공포를 느끼는 환자들을 위해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구비하기도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18년 약 3%에 불과하던 노이즈캔슬링 제품 판매 비중이 지난해 약 13%에 달할 정도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소음으로부터 해방뿐만 아니라 청각 건강을 위해서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에어팟 프로나 WF-1000XM3, JBL 언더아머 플래시 등의 제품은 출고가가 각 32만9000원, 29만9000원, 19만9000원으로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낮은 볼륨에서 선명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는 노이즈캔슬링 제품을 착용하면 청력 손실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실제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볼 때 주변 소음이 안 들리도록 이어폰 볼륨을 높이게 된다. 하지만 높은 볼륨으로 장시간 이어폰을 착용하면 소음성 난청의 위험이 커진다.
시판 중인 음향기기는 대체로 최대 볼륨이 100㏈ 이상인데 대한청각학회는 100㏈에서 보호장치 없이 15분 이상 노출될 때 청력 손실의 위험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학회는 “버스, 지하철 내의 소음이 보통 80㏈ 정도인데, 이러한 장소에서 청소년들이 음악 소리를 들으려고 90㏈ 이상의 소리 크기를 유지해야 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면 난청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소음성 난청은 초기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 없이 높은 음부터 들리지 않기 때문에 빨리 자각하기 어렵다. 초기 치료를 놓치고 증상이 심해지면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소리가 안 들릴 수도 있다. 난청은 치료로 인한 원상복귀가 불가능해 예방이 최우선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소음성 난청을 예방하고자 ‘60·60법칙’을 권고했다. 이 원칙은 ‘최대 볼륨의 60% 이하 수준으로 하루 60분 청취’를 뜻한다. 또한 WHO는 노이즈캔슬링 이어폰·헤드폰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의 노이즈캔슬링 이어폰·헤드폰 사용률은 선진국보다 현저히 낮은 편이다. 수요는 늘고 있지만 아직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2018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100달러 이상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사용률을 보면 노르웨이(55%), 스웨덴(45%), 네덜란드(43%) 등 유럽 국가들은 사용률이 높았으나 한국은 7%에 불과했다.
업계도 청력 건강을 위해 노이즈캔슬링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