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1년4개월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19일 귀국한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뒤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해온 그가 정치 재개를 본격화하는 것이다. 안 전 대표는 4·15 총선을 3개월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린 표심을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낡은 정치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예고했지만 지지층을 모으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안 전 대표는 16일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라는 제목의 책 출간을 앞두고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내 팔자가 바이러스 잡는 팔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의사로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 잡다가, 컴퓨터 바이러스 잡다가, 지금은 낡은 정치 바이러스를 잡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기본적인 약속과 정직, 공정과 원칙이 지켜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일 정치 복귀를 선언하는 페이스북 글에서도 그는 “이념에 찌든 기득권 정치세력들”이라고 기성 정치권을 비판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창당 3개월 만에 38석을 거머쥐도록 해준 중도·무당층을 다시 결집시키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안 전 대표의 향후 행보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는 그가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과 함께 만들었던 바른미래당으로 돌아간 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거취 문제를 비롯해 난제가 많다. 손 대표와 안 전 대표 모두 당대표를 맡지 않고 중도 성향 원로에게 당을 이끌도록 할 가능성도 있다. 안 전 대표 측은 “바른미래당은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상황이기 때문에 안 전 대표가 바른미래당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으로 복귀하는 대신 자신과 가까운 바른미래당 소속 6명과 함께 독자세력화에 나설 수도 있다. 안 전 대표가 이날 “국회의원 한 명 없던 에마뉘엘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뽑은 프랑스에서 국민들의 힘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밝힌 것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독자세력화 과정에서 한국당과의 통합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새보수당과 연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 전 대표 측 인사는 “어떤 방식으로든 거대 양당이 아닌 새 정치세력이라는 인식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안 전 대표가 연대 세력 없이 ‘나 홀로 선거’에 치중할 경우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의 멘토로 불렸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안 전 대표가) 마라톤이 자기한테 딱 맞는 운동이라고 했다던데, 마라톤은 혼자 뛰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정치를 하려면 혼자해선 안 된다는 의미”라며 “과거와 달리 호남 지역을 석권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결국 관건은 안 전 대표가 중도층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안 전 대표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정치재개 메시지를 던질 예정이다. 귀국 다음 날인 20일부터는 각계 인사들을 만나 향후 행보를 논의할 계획이다. 안 전 대표는 이날 편지에서 “정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처음 회사를 창업했을 때처럼 소박한 꿈이 하나 있었다”며 “정직하고 깨끗해도 정치적으로 성과를 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