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15일(현지시간) 공식 서명한 1단계 무역합의로 18개월간 발목을 잡혀 온 세계경제는 일단 시름을 덜게 됐다. 하지만 86쪽 분량의 합의문을 보면 2단계 협상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또 글로벌 교역이 다시 활발해진다는 기대 이면에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길이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 중국이 향후 2년간 미국산 제품 수입을 2000억 달러 늘리면 수입국 비중 조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단계 합의는 미국이 대중 관세를 일부 완화하고 자국 제품 수출을 늘리는 게 골자다. 미국은 2018년 7월부터 크게 4차례에 걸쳐 3700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했다. 평균 3%였던 관세율이 15~25%로 올랐다. 고율관세를 부과한 중국산 제품의 규모는 전체 중국산 수입액(5400억 달러, 2018년 기준)의 68.5%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서는 지난해 9월 신규 부과한 1200억 달러어치에 대한 관세율을 15%에서 7.5%로 낮추고, 지난해 12월로 예고했던 1600억 달러 상당에 대한 15% 신규 관세 부과를 보류하는 데 그쳤다. 2단계 협상에서 ‘관세율 인하’를 지렛대로 삼기 위한 전략이다.
미국은 올해부터 2년간 대중 수출액 2000억 달러 증액이라는 반대급부를 챙겼다. 부문별로 공산품 777억 달러, 농산물 320억 달러, 에너지 524억 달러, 서비스 379억 달러 등이다. 이는 2017년 수입액(1860억 달러)을 기준으로 책정한 것이다. 중국 입장에선 올해 767억 달러, 내년 1233억 달러어치의 미국산 제품을 더 수입해야 한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 12개월간 미국의 대중 수출이 1074억 달러라는 걸 감안하면 향후 2년간 수출이 207%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3582억 달러에서 1750억 달러로 급감할 것으로 추정됐다.
또한 미·중 무역합의는 세계 경제에 긍정 영향을 준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미국 성장률에 0.1% 증가 효과를 보이는 것은 물론 세계경제 성장률이 0.3% 늘어난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2000억 달러어치 미국산 추가 수입’의 파급효과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중국의 내수가 특별하게 늘지 않는 한 다른 국가로부터의 수입 비중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 이베스트 증권은 “미국과의 제품 경합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제조업·서비스 분야는 한국과 일본이, 원자재는 브라질 등 남미가, 에너지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중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증권은 비슷한 분석을 내면서도 “미국의 환율조작국 해제에 응답하는 차원에서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용인하면, 구매력 확대에 따라 중국인의 한국 여행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앞으로 남은 2단계 협상에서는 지적재산권 침해, 기술이전 강요, 산업보조금 지급 등 중국의 무역관행을 시정하는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중국은 미국에서 부과한 징벌적 고관세를 폐지하는 걸 뼈대로 삼는다. 두 나라가 무역합의 이행과정을 점검할 수 있는 정부기관과 정례회의를 신설키로 한 점 등은 긍정적이다. 다만 미국이 주장하는 중국의 구조적 불공정 관행 시정은 양국 첨단산업 경쟁, 사안 복잡성을 감안할 때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를 감안한 듯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2단계 합의가 2A, 2B, 2C 등 세부단계로 나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단계별로 ‘행동’대 ‘행동’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장에선 사실상 2단계 협상이 아닌 6, 7단계로 늘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다 중국의 약속 이행을 강제하도록 관련 법률이나 규정을 개정하는 내용은 합의문에 담기지 않은 게 향후 논란거리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