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건 배달에 2만7430원… 찬바람만 알아주는 노동 가치

입력 2020-01-19 20:49
2019년의 마지막 날 한 전용 마트에 모여 있는 배달 기사들의 모습. 조리시간 동안은 잠깐 쉴 수 있었다(아래).

숨이 가빠 온다. 20분 내 음식을 전달한다 했는데, 벌써 17분이나 늦었다. 가방 속 느껴지던 음식의 온기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렸다. 겨우겨우 목적지인 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한시름 놓은 듯했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깜깜한 밤, 107동이 어딘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드넓은 아파트 단지를 다 헤집고 돌아다녔다. 등과 목덜미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한파가 몰아친 지난달 31일 오후 8시께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기자는 난생처음 배달 일을 하며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윽고 107동이 눈에 들어왔다. 신대륙을 찾은 듯 환호가 터져 나왔지만, 이미 예정 시간보다 30분이 늦은 후였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손님에게 음식을 건네는 손은 연신 떨렸다. 황급히 내려와 배달 수단인 자전거 옆에 기대 연신 한숨을 몰아쉰다. 그렇게 첫 배달을 마쳤다.

수일 전 기자는 크라우드소싱(Crowd Sourcing)인 배민커넥트에 등록해 간단한 배달 기사 교육을 받았다. 오토바이, 자전거 등의 운송 수단을 가진 일반인이 원하는 날과 시간을 선택해 근무하는 방식이다. 교육을 마친 후 관련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면 배달 주문이 들어오고, 기사는 거리를 고려해 배차 신청을 한다. 앱 지도에는 ‘픽업지’와 ‘전달지’의 경로가 표시된다. ‘벨을 누르지 말아 달라’, ‘도착 10분 전 문자를 달라’ 등의 요청사항도 확인할 수 있다.

국물이 있는 음식이나 커피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아슬아슬, 차례차례, 배달을 이어갔다. 다섯 번째 배달을 마쳤을 즈음 자정이 넘어 2020년 새해가 밝았다. 여전히 거리를 오가는 것이라곤 차가운 칼바람과 배달 오토바이 뿐이었다. 배민 렌탈 바이크를 타고 있는 기사와도 종종 마주쳤다. 이들은 배민라이더스 직업 라이더다. 기자가 체험하고 있는 배민커넥트와는 차이가 있다. 이들 다수는 근무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사실상 관리 감독도 받는다. 사실 이들과 배민커넥트는 불편한 존재다. 최근 배민이 배민커넥트를 밀어주고 있는 탓이다.

라이더유니온은 그간 배민이 이동 거리가 짧고, 여러 개의 배달이 가능한 좋은 주문을 배민커넥트에 몰아주고 있다고 호소해왔다. 직업 라이더들은 배민커넥트가 남긴 악조건의 소위 ‘똥콜’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일반인 배달의 확산이 직업 라이더들의 처우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기자는 지난달 31일 오후 8시부터 새해 새벽 2시까지 총 6건의 배달을 마쳤다. 중간 휴식 시간 등을 제외하면 배달 1건당 40분 내지 1시간 정도가 걸린 셈이다. 기자는 당일 발생한 산재보험료 450원과 세금 1620원을 제외하고 총 4만7430원을 받았다. 처음 일한 것에 비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다만 이는 각종 프로모션 금액도 포함된 보수다.

프로모션 금액은 배민에서 던져주는 당근이다. 기자는 배민커넥트 교육 참여와 배달 첫 주 하루 3건 이상 성공 명목으로 총 2만원이 더해졌다. 배달 6건에 대한 순수 배달료는 2만7430원에 불과했다. 당시 강남 서초지역은 0.5km이내 기본 배달료 3000원에 1500원의 지역 프로모션이 붙어 건당 4500원을 받았다. 여기서 0.5km가 초과한 곳은 500원이 더 붙었다. 순수 배달료를 6시간 시급으로 환산하면 약 4500원이다. 물론 배달 업무 경험이 없었던 데다, 자전거라는 한계로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배민 측도 이 점을 상쇄하기 위해 일반인 라이더에 별도 프로모션 금액을 얹어준 것일 터다. 문제는 일반인 라이더가 아닌, 직업 라이더들이 이 같은 프로모션에 생계가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지역 프로모션 추가 수수료를 두고 갈등이 불거졌다. 현재 지역 수수료는 전날 밤 9시 라이더들에게 일괄 공지된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를 고무줄 배달료라고 꼬집는다. 배민 측은 “주문과 라이더 수, 기상 등을 근거로 수수료를 달리 책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배달 노동자들은 “배민이 정확한 책정 근거를 공개하지 않고, 하루 전 일방적으로 이를 공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루하루 노동의 가치가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배민라이더스는 플랫폼 노동자다. 이들 다수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 즉 사 측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일종의 프리랜서다. 자영업자도 노동자도 아닌 제3의 범주로 여겨진다. 노동자로서 법의 보호를 받기 힘든 사각지대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배달 플랫폼 노동자가 향후 크게 늘어날 전망이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 라이더와 직업 라이더의 경계는 희석된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8년 투잡 희망자는 62만9000명에 달했다. 전년보다 10% 이상 늘어난 숫자다. 한국고용정보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향후 대두될 미래 이슈 1위로 ‘플랫폼 노동의 증가’를 꼽았다.

현재 배민은 지난달부터 라이더들과 한 달 단위로 계약을 맺고 있다. 기존에는 세 달이었다. 계약서에 따르면, 회사는 계약 종료 하루 전에도 라이더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플랫폼에 의한 노동 무한 경쟁 시대의 단초로 풀이한다.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현재 배민라이더스의 일반인 라이더 수는 직업 라이더를 넘어 배 이상이 된 상태다. 배민 입장에선 직업 라이더를 통해 초기 사업과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이후 일반인 배달 모집을 시작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배민은 배민커넥트로 마르지 않는 인력 풀을 얻은 셈이다. 이를 통해 필요에 따라 인력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다. 낮은 수수료로 이탈자가 증가하면, 프로모션 명목으로 잠시 수수료를 올려 인력을 충당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쟁에서 기존 전업 라이더들은 더 많은 배달을 해내야 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 배민커넥트의 ‘원하는 날, 원하는 만큼 일한다’는 말을 뒤집으면, ‘회사가 원할 때, 노동자는 언제든 나타난다’가 된다. 플랫폼이 바꿀 미래 고용 시장은 과연 희극일까 비극일까. 오늘도 배달 라이더는 플랫폼 위를 달린다.

한전진 쿠키뉴스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