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나 성도를 더 윤리적인 존재로 변화시키는 게 교회개혁자의 방향이 된다면 ‘도덕 스승’일 수는 있겠으나 종교개혁의 후예로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동시대를 산 1세기의 초대교회도 ‘구제의 치우침’이란 문제가 있었고(행 6:1~6) 초대교회의 지도자인 베드로조차도 목회 중에 보인 그의 ‘위선적 태도’로 인해 바울의 질책을 들어야 하는 윤리적 문제가 있었습니다.(갈 2:11) 그러나 누구도 그런 것의 수정을 종교개혁이나 교회개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교회 안의 문제는, 성도끼리 서로 돌보고 사랑으로 권면하라고 주님께서 주신 섬김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런 것에 교회개혁의 관점을 맞춘다면 지나온 교회역사가 그러하듯 교회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비난의 화살을 서로 주고받다가 하나씩 역사에서 서글픈 외식이나 위선의 증인으로 사라져 갈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이며, 종교개혁은 누가 더 윤리적인가를 찾으라고 주님이 주신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개혁의 부산물인 성도의 삶을 모든 것의 앞머리에 놓는 것은 바른 교회개혁을 방해하는 공작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2세기로 넘어가면서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주제가 누적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교리적 문제였습니다. 삼위일체, 성인과 마리아와 천사의 지위, 면죄부, 연옥, 교황의 권위와 역할 등 참으로 다양한 교리적 문제가 있었지만, 핵심은 단순했습니다. 모든 교리논쟁은 결국 ‘성경과 구원’에 관한 것이고 논쟁의 핵심은 ‘구원자 그리스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로 귀결됐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시절부터 교회 안에서 꿈틀거리던 영지주의 같은 교리적 문제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은 후 더욱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4세기를 열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능력 외에 천사 성인 성물 같은 또 다른 신적 권위를 용인하게 됩니다. 교리 타락의 본격적인 문이 열린 것입니다. 성직 매매, 교황청의 물질적 성적 타락 같은 어긋난 삶의 자세도 바른 신앙을 바라는 이들의 마음에 개혁을 향한 불을 댕겼습니다. 하지만 근원적 문제는 그런 삶을 가져오게 하는 교리적인 것이었습니다. 종교권력과 세속권력의 다툼이나 인쇄술의 발전 같은 부수적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으로는 교리적 혼돈과 비성경적 가르침이 종교개혁의 아침을 연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개혁은 1517년에 마르틴 루터 한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루터 이전에도 영국의 존 위클리프(1330~1384) 체코의 요한 후스(1373~1415) 이탈리아의 기롤라모 사보나롤라(1452~1498) 같은 많은 개혁자들이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바른 교리주장을 통해 종교개혁이라는 열매를 무르익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위클리프는 루터보다 1세기 전에 영국에 종교개혁의 여명을 가져온 인물입니다. 옥스퍼드대학 학장이요 왕실의 목사였던 그는 성경과 이신칭의 교리만이 교회의 유일한 권위임을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 연옥, 면죄부 판매, 성자와 유물 숭배 등을 비판했습니다.
화가 난 교황은 그를 이단으로 정죄한 후 죽은 지 40여년도 더 지난 그의 유골을 무덤에서 꺼내 다시 화형을 집행하게 합니다. 황당하고도 슬픈 역사입니다. 요한 후스는 지금의 체코에 해당하는 보헤미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요 교황의 무오성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합니다.
15세기의 도미닉 수도사였던 이탈리아 사람 사보나롤라는 그리스도와 성경의 가치 그리고 교황의 비성경적인 삶의 태도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다가 이단으로 정죄돼 처형당하지만, 역사는 그가 중세를 밝히는 종교개혁의 등불이었음을 증언합니다.
이 모든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명백합니다. 성경만이 진리요 예수만이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13~15세기뿐만 아니라 4세기의 어거스틴(354~450) 같은 루터 이전의 개혁자들의 신앙도 동일했습니다. 성경의 권위만이 존귀하며 성인과 성물을 신적 영역으로 높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의 지위를 손상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타락한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의 모습은 성경 어디에서도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역사에 루터가 나타나 ‘이신칭의’ ‘오직 예수’ ‘오직 성경’을 말하기 전에 이미 역사에는 교회개혁의 여명이 교리와 신학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으로 밝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교리개혁이 종교개혁과 교회개혁을 가져온 것입니다.
윤리도덕의 추구가 자기에게 평강을 주지 못하는 것을 안 루터에게 ‘이신칭의’의 신학교리는 그의 종교개혁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작금의 인권, 혹은 인간존중의 논리를 교회개혁과 우선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에게는 너무도 낯선 복음입니다.
‘오직 말씀’(Sola Scriptura)의 원리에 굳게 선 종교개혁자들이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돼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quia reformata)고 주장한 것은, 교회는 언제나 ‘오직 성경’ ‘오직 예수’라는 신앙을 확고히 주장해야 한다는 명백한 교리적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혜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