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관계의 진전을 통해 북·미 대화를 추동한다는 신년 구상을 내놓자 관련 부처가 일제히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산가족 개별관광’ 등이 추진 사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선순환했던 2018년의 모습이 재현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다만 아직까지 남측에 냉담한 북한이 태도를 바꿔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한국 정부 구상에 대한 미국의 지지도 필요하다.
미국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한 뒤 기자들을 만나 “특정 시점에 따라서는 북·미가 먼저 나갈 수도 있고, 또 남북이 먼저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남북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 남북의 어떤 대화가 됨으로 해서 북한 인게이지먼트(관여) 모멘텀을 계속 살려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 그동안 중요한 합의들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제재 문제가 있지 않는 부분들도 있고, 제재 문제가 있다고 하면 예외조치 인정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사업들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과의 회담에서 남북 간 협력 사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강 장관은 우리 측의 희망사항에 대해 미국 측이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로 진척이 없는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의 재개를 강조했다. 김 장관은 15일 한 세미나에서 “동해북부선 북측 구간 (현대화) 사업과 함께 105㎞ 남짓한 남측 구간의 연결은 한반도 종단철도의 완성으로 가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과제”라며 “이 구간만 완성되면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북한을 넘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뻗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이 미국과 대북 제재 관련 문제를 놓고 협의한 시점에 김 장관이 철도 문제를 거론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은 대북 제재로 인해 2018년 착공식만 한 뒤 중단됐다.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의 제재 면제를 본격 추진한 뒤 이를 남북 관계 진전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대북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북한 개별관광 등도 검토 중이다.
정부의 구상이 실현되려면 북한의 호응이 중요한데, 현재 남측을 ‘패싱’ 중인 북한이 당장 쉽사리 남북 협력 사업에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과 같이 북한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카드라면 북한이 협력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결국 대북 제재를 피해 굵직한 협력 사업들을 재개할 수 있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미국은 구체적인 북한 비핵화 로드맵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제재 면제 및 예외조치 인정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이란에 대한 제재를 옥죄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만 관대한 모습을 보이기도 어렵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남한의 협력 사업 제안에 대한 북한의 호응 여부는 어떤 수준인지에 달렸다”며 “북한이 원하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 정부의 구상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