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권의 통제에 따른 절제된 수사… 이게 검찰 개혁인가

입력 2020-01-15 04:01
문재인 대통령이 또 ‘절제된 수사’를 말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사권이 절제되지 못한다거나 여론몰이를 한다든가 초법적 권한이 행사된다고 국민이 느끼기 때문에 검찰 개혁이 요구되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만 해도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대는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그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지난 정권을 겨냥한 적폐 수사를 지휘할 때는 대통령을 비롯해 이 정권의 누구도 절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지난해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검찰권의 절제를 강조하기 시작하더니 이제 청와대를 향한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절제된 수사를 외치는 이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다. 이른바 검찰 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시점에 대통령이 다시 강조하면서 절제는 앞으로 검찰이 길러야 할 최고의 덕목이 됐다. 적을 수사할 때는 성역이 없어야 하지만 나를 수사할 때는 절제해야 한다는 논리적 모순쯤은 아랑곳 않고 이 생소한 덕목을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공포스럽다. 문 대통령은 “어떤 사건은 선택적으로 열심히 수사하고 어떤 사건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면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공정하게 수사하라”고 해야 할 일인데, 절제를 주문하면서 “그 수사, 열심히 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셈이 됐다. 최근의 검찰 인사와 직제개편이 모두 그 방향을 가리켰다. 정권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차단하려는 의도를 감출 생각도 없는 듯했다. 이를 절제란 말로 포장해 국가기관의 지향점으로 만들어버렸다.

검찰 개혁의 요체는 명확하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고 비대한 권한을 분산시키는 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의 입법이 완료됐다. 보완할 부분이 많지만 검찰권을 공수처와 경찰에 나눠주는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다. 이제 할 일은 수사기관이 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독립성을 높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회견에서 이것을 말하는 대신 “검찰도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기관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출된 권력의 통제에 따르라는 뜻이다. 군사정권 이후 검찰을 휘둘러온 권력 가운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있었는가. 선출된 권력이 인사권을 무기로 수사를 왜곡되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검찰을 개혁하자는 것이었다. 민주적 통제란 구호는 같은 선출 권력이라도 내 권력은 다르다는 오만함과 권력으로부터의 검찰 독립에 역행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정권의 ‘민주적 통제’에 따라 살아 있는 권력에 ‘절제된 수사’를 하는 검찰. 이것이 과연 그토록 외쳐 왔던 검찰 개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