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태화강(太和江)은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해 47.54㎞를 흘러 남구 매암동에서 동해와 만나는 울산의 젖줄이다. 한때 오염돼 ‘죽음의 강’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하천 정화사업으로 지금은 1급수를 유지한다. 연어가 돌아오는 강이니 생태는 두말할 것도 없다. 700종이 넘는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태의 보고다. 강 주변으로 선바위, 십리대숲, 등 ‘울산 12경’에 포함되는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다.
강물이 범서읍 입암리에 이르면 높은 벼랑 옆에 깊은 담을 이룬다. 백룡(白龍)이 자리잡고 살았다는 백룡담이다. 검은 듯 푸른 수면 위로 금강산 해금강의 한 봉우리를 옮겨놓은 듯 주변 지질이나 암층과는 전혀 다른 암질을 가진 바위가 깎아지른 듯 우뚝하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즐겨찾던 선바위(立石)다. 높이 33.3m(수면 위 21.2m, 수면 아래 12.1m), 수면 위 둘레 46.3m, 바위 꼭대기 부분 폭 2.9m로,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뿜는다. 선바위를 마주보는 벼랑 위에는 학성이씨(鶴城李氏)의 정자인 용암정(龍岩亭)과 선암사가 있다. 태화강의 자연 환경과 생태 자료를 볼 수 있는 태화강생태관은 선바위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태화강은 물길을 따라 대나무 숲을 이어간다. ‘태화강십리대숲’은 태화강대공원 서쪽에 위치한 오산을 중심으로 위로는 구 삼호교, 아래로는 용금소(태화루)에 이르는 대숲이다. 울산의 최초 읍지인 1749년 ‘학성지’에 ‘오산 만회정 주변에 대밭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에 비춰보면 조선 후기부터 대나무가 조림된 것으로 보인다. 4㎞에 이르는 긴 구간에 조성된 대나무 숲은 일제강점기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홍수 방지용으로 대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라 한다. 이 숲은 한때 중앙정부에서 하천정비기본계획을 수립, 사라질 뻔했으나 각계에서의 설득과 계획 수정을 거쳐 보전됐다. 지금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태화강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아래에는 태화강의 명물 ‘태화루’가 있다. 이 누각은 신라시대(선덕여왕 17년, 643년) 건설됐으나 임진왜란 전후에 소실된 기록이 남아 있다.
대나무 숲에 어둠이 내리고 오색 별빛이 쏟아지면 탄성이 나오게 하는 풍경이 이어진다. 다양한 빛을 발하는 LED 조명이 설치된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의 ‘은하수 길’이다. 총 400m 구간에 LED 조명과 레이저 빔을 설치해 밤하늘 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썸’타는 남녀가 걸으면 연인이 되는 길이다. 야간 방문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다.
태화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류로 가면 울산대교전망대가 기다린다. 울산 동구의 해발 140m 지점에 위치한다. 전망대로 가려면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 정도 걸어야 한다. 전망대 1층은 기프트 숍과 카페, 매점, 가상현실(VR) 체험관, 2층은 야외 테라스, 3층은 실내 전망대, 4층은 옥외 전망대다. 이곳은 야경이 멋지다. ‘같은 공간, 다른 느낌’을 준다. 주탑과 주탑 사이가 1150m에 이르는 대규모 현수교가 조명을 밝히면 야경의 결이 달라진다. 울산대교 건너편에는 장생포고래문화마을이 있다. 우리나라 대표 고래잡이 마을이던 장생포의 옛 모습이 새롭게 꾸며져 있다. 고래 해체장과 고래 착유장, 당시의 주택과 상점을 재현했다. 일부 가게는 기념품점이나 음식점으로 활용 중이다. 교복을 입고 마을을 돌아보면 더 재미난다.
울산대교전망대에서 가까운 곳에 슬도(瑟島)가 았다. 슬도는 ‘큰 거문고 슬’자를 쓰는 섬으로 바람이 불면 거문고 뜯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이름을 얻었다. 섬 주변 바위마다 작은 구멍들이 나 있다. 모래가 엉켜 굳은 사암 전체에 구멍이 난 모양이 벌집 같다. 슬도에서 대왕암이 가깝다. 대왕암은 엄청난 규모와 거대한 황토색 기암에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슬도 인근에 소리체험관이 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지역의 산업·문화·자연환경 등을 소리를 통해 들려주는 곳이다. 조선업의 발상지답게 조선소의 망치소리와 몽돌해수욕장의 몽돌 구르는 소리, 바위섬인 슬도의 파도소리, 천년고찰인 동축사의 풍경소리 등 이른바 ‘동구 9경’을 ‘소리 9경’으로 알려주고 있다.
여행메모
울산 선바위는 경부고속도로 언양갈림목에서 울산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범서에서 빠지면 된다. 슬도에서 대왕암까지는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 운치 있다. 여유있게 느릿느릿 걷다 보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십리대숲 은하수길은 해가 지면 모든 경관 조명등이 켜지고 오후 10시까지 운영된다. 울산은 고래의 고장이다. 장생포 고래문화 특구에는 고래박물관·고래생태체험관·고래문화마을 등이 있다. 이중 고래문화마을은 1970년대까지 서태평양 포경업 전진기지였던 장생포 마을의 옛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고래 고기도 맛볼 수 있다. 부위마다 빛깔도 다르고 고래 특유의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익숙해지면 12가지 맛을 느낄 수 있어 별미다. 울주 언양읍은 불고기로 이름난 곳이다. 34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언양진미불고기’와 모든 음식을 옥으로 만든 그릇에 담아내는 ‘언양기와집불고기’ 등 맛집이 즐비하다. 한우불고기에 특제 양념장을 넣고 비벼 먹는 비빔밥은 별미다.
울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