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삶은 여전히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도덕과 결별한 정치는 한껏 위선을 추구하고, 형식에 얽매인 사법은 속빈 분란만 불러오며, 숫자놀음을 앞세운 경제는 서민의 주름만 늘리고, 종교를 위장한 망상은 기꺼이 신을 능멸하며, 온 세상이 갈망하는 평화는 전쟁 장사꾼들의 사악함에 굴복한다. 도대체 살아가는 기쁨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더욱이 호주의 산불을 보라. 불 폭풍이 끝없이 이어져 한반도만 한 땅을 불태우고, 불 회오리가 한없이 일어나 10억 마리 동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도무지 그칠 줄 모른다. 해마다 발생하는 자연 산불이 기록적 대재앙으로 번져 가고 있는 이유를 우리는 이미 안다. 기후 위기다. 산업혁명의 과실에 취해 절제를 모르고 무궁한 욕망을 추구한 인간이 전 지구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이 교란하면서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세상을 만들었다. 종말의 신호탄이 쏘아지고, 파멸의 시간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중이다. “우리 집이 불탄다”라고 했던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경고가 벌써 현실이 되었다. 구원의 징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우리와 상관없는 지구 반대편 먼 나라 이야기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 호주, 뉴질랜드 등과 함께 대표적인 ‘기후 악당’ 국가에 해당한다. 박재용의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뿌리와이파리)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석유로 환산했을 때 2014년 5.32t에서 2017년 5.73t으로 오히려 늘었다.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3위로 미국과 캐나다 다음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각종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너무나 미약하고 소극적이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탄소 에너지에서 태양열, 물, 바람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둘러도 성급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 터인데, 정부는 석탄 또는 천연가스 화력발전소를 계속 짓는다고 한다. 원자력만 아니면 다 괜찮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온실가스를 앞으로 감축하는 척하고 뒤로 더 많이 배출하는 것은 대책일 수 없다. 달리 악당이란 말을 듣는 게 아니다. 호주 정부 역시 우리처럼 기후 변화를 무시하고 자원 개발을 위한 삼림 파괴를 계속하다가 이번에 대재앙을 맞았다. 미래를 위한 책임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파란하늘 빨간지구’(동아시아)에서 조속한 ‘기후 위기’ 대책을 촉구한다. 제목의 ‘빨간 지구’는 본래 우리가 발을 디딘 붉은 흙을 뜻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온난화의 결과로 빨갛게 달아오른 지구가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른다.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파란 하늘’ 문제에는 관심이 아주 많다. 미세먼지 또는 초미세먼지를 둘러싼 정부 차원의 경고가 연일 쏟아지고, 시민들도 공포에 휩싸인 채 성마른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미세먼지(스모그) 문제는 2000년대 초에 더 심각했다. 또한 2010년대 초 ‘클린 디젤’ 사기 이후 경유차 사용이 급증하기 전까지는 해마다 개선되어 왔다. 이 문제에 예산과 기술을 집중하고 규제를 적절히 하며 관련 세금을 늘리는 등 국내 대책을 수립하고 국제 공조에 나서면 빠른 시간 안에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빨간 지구’ 문제는 다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1.5도’라는 한계를 그어 놓고 있다. 이 온도를 넘어서면 인류가 번영해 온 홀로세의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날씨는 끝장나고, 지구 기후가 예측 불허의 혼란과 격변의 시기로 들어선다.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의 결과, 이미 지구 평균 기온이 1도나 올랐다는 것이다. 이미 늦었을 수 있으므로 당장 재앙이 눈에 띄지 않더라도 대책은 빠를수록 좋다.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 평균 기온은 1.8도나 상승했고, 여름철 폭염 날짜가 늘어나는 등 기상 이변이 잦아지고 있다. 변화가 쌓여 한순간 재앙의 임계점을 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불안하고 위태롭다.
지구는 하나뿐이다. 우리는 아무도 이 행성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호주의 불타는 숲에서 억울한 생명을 희생당한 동물들 비명이 심장 밑에서 자꾸 들려온다. 지구가 망가지면 우리 역시 비슷한 신세가 될 것이다. 부지불식중 지구를 먹어 치우고 있는 기후 재앙에 저항할 때다. 더 늦기 전에 ‘기후 위기 비상행동’에 참여해 기후를 지키자.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