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 재선 성공 차이 “위협에 굴복 안해” vs 중국 “독립 시도 반대”

입력 2020-01-13 04:06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11일 수도 타이베이에서 재선이 확정된 직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그는 승리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우리 정부가 결코 위협과 협박에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중국이 알기 바란다”고 말했다. EPA연합뉴스

대만 총통 선거에서 독립 성향의 현 차이잉원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중국과의 갈등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차이 총통이 당선 후 “(중국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중국은 “대만 독립이나 분열 시도를 결연히 반대한다”고 경고했다. 중국 언론들도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차이 총통 집권 2기에도 대만과 중국의 벼랑 끝 대치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12일 중화권 매체 등에 따르면 차이 총통은 당선이 확정된 전날 오후 9시쯤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대만인들은 더욱 크게 우리의 의지를 외칠 것”이라며 “국민이 선택한 정부는 절대로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차이 총통은 다만 “중국이 대만의 민의를 존중하고, 중화민국 대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언제든 양안 간 대화와 협상을 재개할 것”이라고 여지를 열어뒀다.

이에 대해 마샤오광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우리는 평화통일과 일국양제의 기본방침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며 “중국은 어떠한 형식의 대만 독립과 분열 시도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차이 총통 당선을 축하한 미국·영국·일본 등에 외교 루트를 통해 공식 항의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선거는 중국 지방의 일”이라며 “이들 국가의 행동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강력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 후보로 나선 차이 총통은 817만231표(57.13%)를 득표해 552만2119표(38.61%)를 얻은 국민당 후보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264만여표 차이로 누르고 15대 대만 총통에 당선됐다. 차이 총통의 득표수는 1996년 대만 총통 직선제 시행 후 가장 많은 것이다. 투표율은 2016년 대선 때(66.27%)보다 높은 74.9%를 기록했다. 민진당은 같은 날 치러진 입법의원(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전체 113개 의석 중 과반인 61석을 차지했다. 국민당은 38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번 선거에서는 홍콩 시위 사태가 영향을 끼치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귀향 전세버스를 마련하는 등 청년층의 투표 열기가 뜨거웠다. 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망국 위기감’(亡國感)과 함께 반중 정서가 확산된 탓으로 풀이된다. 선거 전날 주요 지역 교통편은 투표를 위한 승객들로 매진됐고 SNS에는 투표를 위해 귀국했다며 여권 사진을 올리는 ‘인증샷’ 바람도 불었다. 대만에서는 부재자 투표 제도가 없어 주소지에서 투표해야 한다.

중국의 강경 일변도 정책이 차이 총통 재선에 일조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향후 유화책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몽을 내세우며 홍콩, 마카오와 대만까지 통일하는 큰 그림을 강조하고 있으나 근간인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미 웨스턴켄터키대학의 티모시 리치 교수는 “중국은 대만 수교국에 ‘단교’를 압박하며 대만을 고립시키려 했으나 이런 압박이 오히려 민진당의 지지율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린잉위 대만 중정대학 교수는 “중국이 군사적 위협을 계속할 가능성이 있지만 대만 내 반중국 정서를 감안하면 기존 대만 정책 수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