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하라.”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
이란 대학생과 시민 등 1000여명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수도인 테헤란 시내에서 혁명수비대 등 군부와 정부를 비판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혁명수비대가 우크라이나 여객기 피격을 시인하자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였다.
영국 BBC는 아미르카비르 공과대학과 샤리프 공과대학 등 최소 두 곳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가 점차 비판 시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란 언론은 시위 참여자가 1000여명이라고 전했지만 미국 CNN방송은 수천명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시위는 테헤란뿐만 아니라 시라즈, 이스파한, 하메단, 우루미예 등 이란의 다른 도시에서도 열렸다.
시위대는 “부끄러워하라”거나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민항기 격추라는 초유의 사고를 일으킨 혁명수비대와 정부를 비판했다.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은 이란이 반미시위에서 주로 외치는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비튼 것이다. 소셜미디어에는 시위대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퇴진과 여객기 격추 책임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며 “독재자에게 죽음을” 혹은 “하메네이는 살인자” 등의 구호를 외치는 영상들도 올라왔다.
2009년 당시 반정부 민주화 시위의 구심 ‘녹색운동’을 이끌었던 야권의 메흐디 카루비는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태의 책임을 물어 하메네이의 사퇴를 요구했다. 카루비는 인터넷에 게재된 성명을 통해 여객기 격추 사실을 보고받은 시점과 대중에 여객기 추락의 진짜 원인을 알리는 게 지연된 까닭을 캐물었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의 사임 요구는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이번 사태의 파장이 심상치 않을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이후 이란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다가 솔레이마니 사령관 피살 후 반미로 방향이 바뀌었다. 하지만 여객기 격추가 밝혀지면서 다시 반정부 시위가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한편 이란 주재 영국 대사는 한 대학 앞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 참석했다가 체포됐다. 이란 언론은 “롭 매케어 대사가 과격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조직, 선동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매케어 대사는 3시간 만에 석방됐지만 12일 소환돼 기소될 예정이다. 매케어 대사가 체포되자 영국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영국 언론은 “추모 집회가 반정부 시위로 번지자 매케어 대사는 현장을 떠났는데 이후 대사관으로 복귀하던 중 붙잡혔다가 풀려났다”고 전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