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미봉남 넘어선 무시와 모욕이 일상화됐다…
이러다 北이 어느 날 손을 내밀면 국민들이 환영할 수 있을까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담화를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자 답하는 형식이었다. 대화 조건을 한층 높였다. “일부 제재 완화와 핵시설을 바꾸는 협상은 이제 없다. 대화하려면 미국이 우리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조·미 수뇌의 친분에 기대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의 동력이던 톱다운 접근을 다시 시도한 거였는데 이마저 거부했다. 하지만 “충격적 실제 행동” 같은 위협 발언을 꺼내지 않았고, 탄핵과 대선의 미국 내부 사정을 이해한다는 투의 언급도 했다. 당분간 관망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북·미 교착상태는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미국을 향해 나름대로 강약을 조절한 것과 달리 한국을 겨냥한 담화 뒷부분은 읽어낼 행간이 거의 없을 만큼 조롱과 비난으로 가득했다. 트럼프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했다는 청와대 발표를 놓고 “남조선 당국이 숨 가쁘게 흥분에 겨워 온몸을 떨며 대긴급통지문으로 알려온 생일 축하 인사를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친서로 직접 전달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한집안 족속도 아닌 남조선”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 신세” 등의 노골적 표현으로 비아냥거리며 한국 정부의 중재자 역할에 대해 “주제넘은 일이니 자중하라”고 했다. 이것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 언급을 생략하고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에도 무반응으로 일관한 북한이 새해 들어 사실상 처음 내놓은 대남 메시지였다. “김정은 답방”을 말하는 문 대통령의 인식과 간극이 커도 너무 크다. 북한의 대남 입장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을 넘어 무시와 조롱이 됐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이 손을 내밀면 우리는 또 감동하며 겨레와 통일을 말해야 하는 것일까. 김 위원장의 답방이 성사되기라도 하면 이런 조롱의 언어는 다 잊고 환영하면 되는 것일까. 판문점과 평양 회담에서 한민족을 강조하다 이렇게 돌변한 북한을 우리가 다시 신뢰해야 할 근거는 무엇일까. 하노이 회담 이후 1년 가까이 북한 행태를 지켜본 많은 국민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남북 관계 개선은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돼야 하는 일이다. 이런 의문과 의구심이 존재한다면 그 동력이 갖춰지기 어렵다. 지금 중요하게 살펴야 할 것은 북한 정권의 분위기보다 우리 국민의 여론과 정서일 수도 있다. 남북 관계의 해빙을 반겼던 이들이 지금 무얼 말하는지, 북한의 행태를 우리가 자초한 측면은 없는지 진지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사설] 北의 대남 조롱과 비난,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가
입력 2020-01-13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