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당, 본사 살리는 묘수 될까 함께 묻히는 악수될까

입력 2020-01-11 04:01

위성 비례정당은 오는 4월 15일 치러지는 21대 총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위성 비례정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내는 정당이다.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대안신당)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자유한국당은 ‘비례자유한국당’을 설립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군소 정당에 빼앗길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위성 비례정당을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비례자유한국당을 ‘꼼수’로 규정하고 민주당에선 위성 비례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지난 9일 공식 발표했다. 위성 비례정당은 이번 총선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위성 비례정당은 묘수”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배분할 경우 정당이 지역구 의석수를 많이 얻을수록 비례대표 의석수는 줄어들게 된다. 예컨대 A라는 정당이 국회의원 정수 300명 중 정당득표율을 10%를 받고 지역구 의석수를 30석을 얻는다면, A당은 연동형 비례제의 적용을 받는 비례 의석 30석 중 가져갈 수 있는 의석이 없다. 연동형 비례제에서는 A당이 확보한 전체 의석 비율이 10%이니 비례대표 의석을 더 배분하지 않는다.

다만 A당은 연동형 비례제를 적용받지 않는 비례 의석 17석 중 10%인 2석을 배분받게 된다. 개정된 선거법은 비례의석 47석 중 30석에만 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하고 나머지 17석만 이전 총선 규칙대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나누도록 하고 있다.

반면 직전 20대 국회 총선룰에 따르면 A당은 비례대표 의석 47석 중 10%인 5석을 얻는다. A당 입장에선 연동형 비례제 적용으로 3석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당은 지역구 의석수를 많이 얻을수록 비례대표 의석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비판한다.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이라는 ‘묘수’를 냈다는 게 한국당 주장이다. 한국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한 명도 내지 않은 상황에서 비례자유한국당이 ‘한국당 득표율’을 고스란히 가져가겠다는 셈법이다.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록을 이미 마친 상황이다.

비례민주당까지 생기면 양당체제 심화

위성 비례정당 출현은 거대 양당 의석수를 늘어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지역구 의석수와 최근 여론조사 결과(YTN-리얼미터 1월 1주 차 여론조사)에 따른 정당 지지율을 적용할 경우 민주당과 한국당 의석수는 늘어난다. 반면 군소 정당의 의석수는 줄어들게 된다.

위성 비례정당이 없다고 가정하고 개정 선거법을 적용하면 민주당(지지율 41.8%)은 비례 의석 47석 중 18석을, 한국당(32.1%)은 14석을, 정의당(5.5%)은 10석을, 바른미래당(4.6%)은 5석을 얻는다. 여기에 비례자유한국당이 창당돼 있다고 가정하면, 민주당은 10석이 줄어들고 한국당은 17석이 늘어난다. 정의당은 4석이, 바른미래당은 3석이 감소한다. 한국당 의석만 크게 늘고 다른 당의 의석은 모두 줄어든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모두 위성 비례정당을 만들면 양당은 이전 선거제 적용 때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이전 선거제에 따라 비례 의석을 나눠보면 민주당 22석, 한국당 17석, 정의당 4석, 바른미래당 4석을 각각 가져간다. 개정된 선거법하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의 위성 비례정당이 만들어질 경우 이전 선거제를 적용할 때에 비해 민주당은 2석, 한국당은 1석을 더 가져간다. 정당득표율을 전체 의석수 비율에 반영하겠다는 연동형 비례제 취지와 달리 양당체제가 심화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통해 의석 다수를 얻을 것을 우려해 그동안 비례민주당 창당을 고민해왔다. 그러나 민주당 총선기획단은 9일 “‘비례자유한국당’ 꼼수가 가시화되고 의석수의 현저한 감소가 예상되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지역구 선거와 비례 정당투표 모두에서 정정당당하게 총선에 임할 것”이라며 비례민주당 창당은 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한국당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한국당 지지자들이 지역구 의원 투표용지에 한국당 후보를, 비례의원 투표용지에 비례자유한국당을 찍어야 한다. 정당과 계열사 격인 위성 비례정당이 하나의 정당이라는 인식을 유권자에게 심어줘야 하는 것이다.

생소한 위성 비례정당 찍을까

선거법이 통과되기 전인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선거법이 날치기 처리되면 비례를 노리는 정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100개가 넘을 수도 있다”며 20대 총선 때의 짧은 투표용지와 1.3m짜리 가상의 투표용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위성 비례정당의 성공 여부는 물론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한국당은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 현역 의원들을 차출해 비례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등록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회 의석수 순으로 투표 기호가 정해지기 때문에 비례자유한국당이 앞 번호를 받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당이 20명 이상의 의원을 보낸다면 비례자유한국당은 기호 3번을 얻을 수 있다.

손민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무관은 10일 “한국당이 비례대표를 내지 않는다면 기호 2번이 비례 투표용지에서 빠지게 된다”며 “그러면 투표용지 두 번째 칸에 기호 3번 정당이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이 갑자기 탄생한 위성 비례정당을 어떻게 인식할지도 미지수다. 여권에서는 ‘꼼수 정당’이 되레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비례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제가 한국당에 불리하다는 판단으로 만들어진 꼼수”라며 “묘수가 아니라 꼼수라는 인식이 퍼지면 자칫 비례자유한국당도 찍지 않고 지역구 투표에서도 한국당을 찍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

비례대표 의석을 노린 군소 정당이 난립하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결국 심판은 유권자가 하는 것”이라며 “유권자들이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위성 비례정당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찍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용현 박재현 기자 face@kmib.co.kr